밸런스 테스트 - 수치 게임 QA의 묘미

밸런스 테스트 - 수치 게임 QA의 묘미

밸런스 테스트 - 수치 게임 QA의 묘미

오전 10시, 새 빌드

출근했다. 오늘 테스트할 신규 던전 빌드가 올라와 있다.

기획 문서 열었다. A급 보스 권장 레벨 45, 예상 클리어 타임 3분. 공격력 1200, 방어력 800, HP 50만.

수치다. 전부 수치다.

치트 툴 켰다. 레벨 45 캐릭터 생성. 장비 세팅. 공격력 900, 방어력 600. 평균 유저 스펙이다.

“첫 판 가본다.”

던전 입장. 보스 등장. 일반 공격 때린다. 데미지 1850.

계산기 두드린다. 1850 × 60타 = 11만. HP 50만이면 5분은 걸린다.

기획 문서엔 3분이라고 했다.

틀렸다.

반복의 시작

보스 패턴 익힌다. 1페이즈 회전 공격, 2페이즈 돌진, 3페이즈 광역기.

회전 공격 맞는다. 데미지 3200. 내 HP 2만.

“아, 이거 한 방에 15프로 까이네.”

엑셀 연다. 데미지 로그 시트 만든다. 패턴별로 입력한다.

  • 회전 공격: 3200 (15%)
  • 돌진: 4500 (22%)
  • 광역기: 6000 (30%)

물약 쿨타임 10초. 회복량 5000.

계산한다. 광역기 2번 맞으면 죽는다. 물약 쿨 안 돌아오면 끝이다.

“밸런스 개판이네.”

다시 들어간다. 이번엔 회피에 집중한다. 3분 30초. 클리어.

또 들어간다. 2분 50초.

또. 3분 10초.

또. 3분 20초.

10번 돌렸다. 평균 3분 15초.

기획이 원한 건 3분이다. 15초 차이.

수치의 세계

점심 먹고 왔다. 편의점 도시락 5500원.

오후엔 확률 테스트다.

신규 무기 강화 시스템. 기획서에 ‘10강까지 평균 시도 횟수 50회’ 라고 적혀 있다.

매크로 돌린다. 자동 강화 스크립트.

1강: 100% - 1회 2강: 90% - 2회 3강: 80% - 3회 4강: 70% - 5회 5강: 60% - 8회

여기까진 괜찮다.

6강: 50% - 23회

“뭐야 이거.”

다시 돌린다. 이번엔 15회.

또 돌린다. 31회.

또. 19회.

또. 41회.

50번 테스트했다. 6강 평균 시도 횟수 27회.

확률 50%가 아니다. 체감상 30%다.

로그 뽑는다. 서버 확률 테이블 확인 요청한다.

답 왔다. “클라이언트 표기 오류입니다. 실제 확률 35%.”

“아…”

기획자한테 슬랙 날린다. “6강 확률 표기 오류 있습니다. 실제 35%인데 50%로 표기됨.”

답장 온다. “확인했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3시간이 날아갔다.

극한 테스트

오후 4시. 극한 상황 테스트 시작한다.

치트로 최강 장비 맞춘다. 공격력 2000, 방어력 1500.

아까 그 보스 간다. 1분 20초 클리어.

“개쉽네.”

이번엔 최저 스펙. 공격력 600, 방어력 400.

들어간다. 보스 일반 공격에 HP 절반 날아간다.

5분 버틴다. 회피만 한다. 공격 못 한다.

10분. 보스 HP 80% 남았다.

“이거 클리어 불가능한데.”

기획자한테 리포트 쓴다.

“권장 레벨 45, 최저 스펙으로 클리어 불가. 공격력 750 이상 필요. 기획서 수정 제안.”

답장. “검토하겠습니다.”

검토만 한다. 수정은 안 한다.

밸런스의 함정

저녁 7시. 야근 시작.

신규 스킬 데미지 테스트. 기획서엔 ‘기존 스킬 대비 120% 데미지’ 라고 적혀 있다.

더미 몬스터 소환한다. HP 10만짜리.

기존 스킬 쓴다. 데미지 8500.

신규 스킬 쓴다. 데미지 13000.

계산한다. 13000 ÷ 8500 = 153%.

120%가 아니다. 153%다.

“이거 사기 스킬인데.”

PvP 모드 켠다. 더미 캐릭터 소환.

신규 스킬로 때린다. 3초 컷.

“밸런스 박살났네.”

리포트 쓴다. “신규 스킬 데미지 과다. 기획 대비 130% 높음. PvP 밸런스 붕괴 우려.”

기획자 답장. “의도된 수치입니다. 신규 스킬이라 강하게 설정했습니다.”

”…”

유저들이 미쳐날뛸 게 보인다.

엑셀 지옥

밤 9시. 커피 네 번째.

밸런스 시트 정리한다. 오늘 테스트한 수치 전부 입력.

  • 보스 클리어 타임: 평균 3분 15초 (기획 3분)
  • 강화 확률: 표기 오류 (50% → 35%)
  • 최저 스펙 클리어: 불가능 (공격력 750 이상 필요)
  • 신규 스킬: 과다 데미지 (153%, 기획 120%)

빨간 글씨 네 개.

내일 회의에서 욕먹을 게 보인다.

“QA가 테스트를 어떻게 한 거야?”

아니다. 내가 틀린 게 아니다. 수치가 틀렸다.

하지만 티켓은 QA한테 온다.

“재현율 100%입니다. 로그 첨부했습니다.”

방어용 문장이다.

수치의 무게

밤 11시. 퇴근 준비.

오늘 테스트한 던전 몇 번 돌았는지 센다.

37번.

같은 보스 37번 잡았다.

이제 패턴 다 외웠다. 눈 감고도 회피한다.

재미없다.

게임이 아니다. 노동이다.

집 가는 버스에서 생각한다.

유저들은 이 던전 한두 번 돌고 “재밌네” 한다.

나는 37번 돌고 “수치 틀렸네” 한다.

같은 게임, 다른 세계.

수치 뒤에 숨은 노동. 밸런스 뒤에 숨은 반복.

공격력 1200, 방어력 800, HP 50만.

이 숫자들이 적당한지 확인하려고 오늘 하루가 갔다.

내일도 간다.

모레도.


수치는 거짓말 안 한다. 사람이 거짓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