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 QA의 회의

건강검진 결과, QA의 회의

건강검진 결과지 회사에서 건강검진 받으라고 했다. 작년 11월에 예약했는데 런칭 때문에 두 번 미뤘다. 오늘 드디어 갔다. 오전 7시 금식 상태로 병원 도착.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위내시경. 수면 안 하고 했다. 3만원 아끼려고. 목구멍에 카메라 들어갈 때 눈물 났다. 검사 끝나고 의사 상담. 결과지 보더니 한숨 쉰다. "수면 패턴이 안 좋네요. 야근 많이 하세요?" "CBT 시즌엔 매일요." "간 수치 높아요. 술 드세요?" "에너지 드링크요." 의사가 펜 내려놨다.빨간 줄 세 개 결과지에 빨간 줄 세 개. 간 수치 - 정상 범위 초과 위 - 경미한 염증 혈압 - 고혈압 전 단계 27살 남자 평균치보다 다 높다고 했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식사, 스트레스 관리 필요합니다." 웃음 나왔다. 충분한 수면? 지난달 CBT 때 사흘 동안 총 8시간 잤다. 하루 평균이 아니다. 사흘 합쳐서. 규칙적인 식사? 점심은 테스트하면서 김밥 한 줄. 저녁은 야근 시작하면서 컵라면. 밤 11시쯤 치킨 시켜 먹고. 스트레스 관리? 런칭 전날 밤 11시에 치명적 버그 발견하면 어떻게 관리하냐고. "생활 습관 개선 안 하시면 30대에 문제 생깁니다." 알고 있다. 근데 어떻게 하냐고. CBT의 기억 지난달 CBT가 지옥이었다. 2주 동안 하루 16시간씩 테스트. 주말도 없었다. 유저들 피드백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버그 찾고 리포트 쓰고 재현하고. 에너지 드링크를 하루에 다섯 캔 마셨다. 레드불, 핫식스, 몬스터. 냉장고에 쟁여놨다. 동료 하나는 하루에 여덟 캔 마셨다. 밤 3시에 눈이 침침했다. 모니터가 세 개로 보였다. 화장실 가서 찬물로 세수했다. 돌아와서 다시 테스트. 새벽 5시쯤 책상에 엎드려 잤다. 30분 자고 일어났다. 목이 빳빳했다. 계속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기획자한테 인수인계. "여기까지 확인했어요. 이 버그는 재현율 100%고요. 로그는 메일로 보냈어요." 집 가서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잤다. 12시간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또 출근. 2주 끝나고 몸무게 재봤다. 3킬로 빠졌다. 밥을 안 먹어서가 아니다. 스트레스로 녹았다.팀장의 말 검진 결과 팀장한테 보고했다. "건강 챙겨야지." 그 말뿐이었다. 다음 CBT는 다음 달이다. 신규 콘텐츠 3개 추가된다. 테스트 기간은 2주. 또 밤샐 거다. "이번엔 좀 일찍 끝낼 수 있게 해볼게요." 팀장이 말했다. 근데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 했다. 그 전에도. 결국 개발 일정이 밀린다. 빌드가 늦게 온다. QA는 시간 없다. 야근한다. 악순환이다. 회사는 '워라밸' 강조한다. 인사팀에서 메일 온다. '저녁 있는 삶' 캠페인. 웃긴다. 우리 팀 평균 퇴근 시간 10시. CBT 시즌엔 퇴근이 없다. 동료의 입원 작년에 같은 팀 형이 쓰러졌다. CBT 마지막 날 새벽 4시. 갑자기 "어지럽다" 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119 불렀다. 과로로 인한 탈수 증세. 병원에서 링거 맞고 하루 입원했다. 퇴원하고 다음 날 출근했다. 런칭이 3일 남았으니까. 그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근데 어쩌냐. 일은 해야 하니까. 형은 그 프로젝트 끝나고 퇴사했다. "몸 망가지면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지금은 작은 회사 다닌다. 연봉 좀 줄었는데 야근은 없다고. 부럽다. 약국 영수증 검진 끝나고 약국 갔다. 위장약, 종합 비타민, 간 영양제. 의사가 추천한 거다. 계산하니까 8만 원. 한 달 치다. 연봉 3400만원에 월 40만원 고시원 살면서 한 달에 8만 원을 약에 쓴다. 이상하다. 집에 와서 약 먹었다. 식후 30분, 하루 두 번. 근데 다음 날 야근하면서 저녁 거르고 밤 11시에 치킨 먹었다. 약은 못 먹었다. 공복에 먹으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약 먹는 것도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불가능하다.엄마한테 말 못 하는 것 이번 주말에 엄마한테 전화 왔다. "회사 어때? 힘들지는 않고?"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건강검진 결과는 말 안 했다. 걱정하실 거니까. 엄마는 내가 '게임회사' 다닌다는 것만 안다. 게임 QA인지,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CBT 때 어떤지는 모른다.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거다. "엄마 아는 애 아들도 게임회사 다니는데 돈 잘 번대. 너도 열심히 해." 그 애는 아마 개발자일 거다. QA는 돈 못 번다. "네, 열심히 할게요." 전화 끊고 나서 씁쓸했다. 27살에 부모님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서 거짓말한다. 초라하다. 다음 CBT까지 3주 이번 CBT 준비 시작됐다. 어제 회의에서 일정 나왔다. 빌드는 2주 후, CBT 시작은 3주 후. "이번엔 미리미리 준비해서 야근 없게 합시다." PM이 말했다. 다 웃었다. 불가능한 거 알고 있다. 테스트 케이스 짜기 시작했다. 신규 던전 3개, 신규 보스 5개, 신규 아이템 200개. 확률 검증만 일주일 걸린다. 벌써부터 피곤하다. 건강검진 결과지는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가끔 꺼내 본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식사, 스트레스 관리' 웃긴다. 게임 QA한테 충분한 수면이 어디 있냐고. 그래도 이 일이 싫은 건 아니다. 버그 찾는 건 재밌다. 유저들이 즐겁게 게임하려면 우리가 필요하다. 그건 안다. 근데 몸은 솔직하다. 27살에 간 수치 높고 위염 있고 혈압 올라간다. 30살 되면 어떻게 되냐. 이 업계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동료들 봐도 30대 중반 넘어가는 QA는 거의 없다. 다들 이직하거나 직무 전환하거나. 나도 그럴 것 같다. 근데 지금은 일단 다음 CBT를 준비한다. 에너지 드링크 사 놓고, 비상약 챙겨 놓고. 건강검진 결과지는 다시 서랍에 넣는다. 다음 검진은 1년 후다. 그때도 빨간 줄이 있을 거다. 아마 더 많아질 거다.충분한 휴식? CBT 끝나고 생각해볼게.

런칭 전야, 잠을 못 자는 이유

런칭 전야, 잠을 못 자는 이유

런칭 전야, 잠을 못 자는 이유 오후 11시, 불이 켜진 사무실 퇴근 시간은 6시였다. 지금 11시다. 사무실에 불이 다 켜져 있다. 개발팀, 기획팀, 운영팀, QA팀 모두 남아 있다. 내일이 런칭이다. 정식 오픈. 2년 반 만든 게임이다. 기획자 민수형이 모니터 앞에서 엑셀을 보고 있다. 개발자 준호형은 코드를 계속 고치고 있다. 운영팀 누나들은 공지사항을 쓴다 지운다 반복한다. 우리 QA팀도 마찬가지다.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다. 오후 8시에 올라온 빌드를 받았다. "마지막 수정본"이라고 했다. 근데 벌써 세 번째 "마지막"이다.런칭 전날 밤의 의식 런칭 전날 밤은 항상 이렇다. CBT 때도 그랬다. OBT 때도 그랬다. 지금도 똑같다. 다들 남아서 일한다. 점검한다. 확인한다. "혹시 모를 버그"를 찾는다. 근데 솔직히 이 시간에 버그 찾아봤자다. 고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찾는다. 안 찾을 수가 없다. 내일 오전 10시에 서버가 오픈된다. 유저들이 들어온다. 그때 버그가 터지면? 생각하기 싫다. 나는 지금 신규 유저 플로우를 점검하고 있다. 튜토리얼부터 10레벨까지. 계정을 새로 만들어서 처음부터 플레이한다. 벌써 다섯 번째 계정이다. 같은 대사를 다섯 번 본다. 같은 전투를 다섯 번 한다. 지겹다. 근데 해야 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들 체크리스트가 있다.튜토리얼 스킵 버그 없는지 신규 유저 보상 제대로 나오는지 상점 결제 정상 작동하는지 로그인 서버 부하 견딜 수 있는지 채팅 욕설 필터 작동하는지리스트가 50개다. 다 확인해야 한다. 결제 테스트를 한다. 실제로 돈을 쓰는 건 아니고 테스트 결제다. 1000원 패키지를 산다. 아이템이 들어온다. 로그를 확인한다. 정상이다. 10000원 패키지를 산다. 보너스 재화가 들어와야 한다. 들어왔다. 정상이다. 근데 불안하다. 혹시 실제 결제에서는? 혹시 동시 접속 1000명 넘으면? 옆자리 성훈이가 말한다. "형, 상점 UI 겹치는 거 아직도 안 고쳐졌어요." 알고 있다. 해상도 특정 비율에서 버튼이 겹친다. 기획팀한테 말했다. 개발팀한테도 말했다. "우선순위 낮음"이라고 했다. 런칭하면 유저들이 신고할 거다. 커뮤니티에 스크린샷 올라올 거다. "이게 정식 게임이냐"는 댓글 달릴 거다. 우리 탓이 된다.자정이 지났다 12시 30분이다. 팀장님이 편의점 가신다고 한다.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묻는다. 다들 에너지 음료 시킨다. 나도 레드불 달라고 했다. 오늘만 벌써 세 개 마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근데 안 마시면 졸린다. 준호형이 커밋을 올렸다. "긴급 수정"이라고 한다. 또 빌드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빌드 받는 데 20분 걸린다. 설치하는 데 10분 걸린다. 그동안 화장실 갔다 왔다. 거울을 봤다. 눈이 충혈됐다. 머리가 떡졌다. 얼굴이 푸석하다. 27살 맞나 싶다.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든다. 아니, 안 든다. 피곤하다. 새벽 2시의 발견 테스트를 계속한다. 신규 빌드에서 퀘스트를 진행한다. 5번 퀘스트까지 정상이다. 6번 퀘스트를 받는다. NPC를 클릭한다. 대화창이 안 뜬다. 다시 클릭한다. 안 뜬다. 게임을 껐다 킨다. 다시 해본다. 또 안 뜬다. 심장이 멈춘다. "형, 이거 좀 봐요." 성훈이를 부른다. 성훈이도 해본다. 안 된다. 빌드 문제다. 기획팀 민수형을 부른다. 민수형이 당황한다. 준호형을 부른다. 준호형이 로그를 본다. "스크립트 파일이 안 들어갔네." 새벽 2시에 발견한 크리티컬 버그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이 안 된다. 게임을 못 한다. 지금 고쳐야 한다. 준호형이 파일을 넣는다. 다시 빌드한다. 20분 기다린다. 팀장님이 편의점에서 돌아왔다. 레드불을 나눠준다. 상황을 보고한다. 팀장님이 한숨 쉰다. "잘 찾았어. 지금 고치는 거지?" 네. 고치고 있습니다.새벽 3시, 잠이 안 오는 이유 빌드가 올라왔다. 다시 테스트한다. 이번엔 된다. 퀘스트가 진행된다. NPC 대화가 뜬다. 정상이다. 처음부터 다시 해본다. 또 된다. 세 번 해본다. 문제없다. "됩니다." 보고를 올린다. 준호형이 고맙다고 한다. 민수형이 수고했다고 한다. 근데 안심이 안 된다. 혹시 또 다른 버그가 있으면? 혹시 우리가 못 찾은 게 있으면? 아까 그것도 거의 못 찾을 뻔했다. 6번 퀘스트까지 안 갔으면 몰랐을 거다. 런칭하고 유저들이 찾으면? 생각하기 싫다. 새벽 4시, 그래도 계속한다 계속 테스트한다. 7번 퀘스트, 8번 퀘스트, 10번 퀘스트까지. 전부 정상이다. 던전에 들어간다. 몬스터를 잡는다. 보상을 받는다. 정상이다. 상점에 간다. 아이템을 산다. 사용한다. 정상이다. 파티를 만든다. 성훈이 계정을 초대한다. 같이 던전 간다. 정상이다. 체크리스트를 확인한다. 40개 완료했다. 10개 남았다. 성훈이가 졸고 있다. 의자에 기대서 눈을 감았다. 깨우지 않는다. 나도 졸린데 성훈이는 더 졸릴 거다. 민수형도 책상에 엎드려 있다. 준호형은 아직도 모니터를 보고 있다. 운영팀 누나들은 회의실에서 자고 있다. 다들 지쳤다. 근데 내일이면 끝난다. 아니, 오늘이다. 몇 시간 후면 런칭이다. 새벽 5시, 체크리스트 완료 마지막 항목을 확인한다. "서버 시간 동기화 테스트". 게임 시간이랑 실제 시간이 맞아야 한다. 일일 퀘스트 리셋 시간, 출석 보상 시간, 이벤트 시작 시간. 전부 확인한다. 정상이다. 체크리스트 50개 전부 완료했다. 팀장님한테 보고한다. 팀장님이 고생했다고 한다. 이제 좀 쉬라고 한다. 근데 못 쉰다. 불안하다. 성훈이를 깨운다. "형, 다 했어요?" 응, 다 했어. "그럼 집 갈까요?" 집 가도 잠 못 잔다. 그냥 여기 있는다. 새벽 6시, 런칭 2시간 전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한다. 대표님도 왔다. 런칭 보려고 일찍 온 거다. 개발팀 다른 팀원들도 온다. 디자인팀도 온다. 다들 긴장한 얼굴이다. 운영팀에서 커피를 내린다. 다 같이 마신다. 말이 없다. 대표님이 말한다. "2년 반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잘 되면 좋겠습니다." 박수가 나온다. 근데 어색하다. 다들 긴장해 있다. 나도 긴장된다. QA는 끝났는데 긴장된다. 혹시 모를 버그. 혹시 모를 문제. 서버가 터지면? 결제가 안 되면? 게임이 튕기면? 우리 탓이 된다. 오전 8시, 최종 점검 마지막 점검을 한다. 운영팀에서 서버 상태를 확인한다. 개발팀에서 로그를 본다. QA팀에서 테스트 서버에 다시 접속한다. 전부 정상이다. 공지사항이 올라간다. "오전 10시 정식 오픈".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다. 유저들이 기대한다는 댓글을 단다. 기대가 부담이 된다. 성훈이가 말한다. "형, 떨려요." 나도 떨린다. 손이 떨린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아니다. 긴장해서 그렇다. 준호형이 농담한다. "우리 이력서 준비해야 하나." 웃기려고 한 말인데 안 웃긴다. 진짜 그럴 수도 있다. 런칭이 망하면. 버그가 터지면. 오전 9시 50분, 10분 남았다 서버 오픈 10분 전이다. 사무실에 다 모였다. 개발팀, 기획팀, 운영팀, QA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전부 모였다. 대표님이 카운트다운을 하자고 한다. 모니터에 서버 관리 창이 떠 있다. 오픈 버튼이 보인다. 10시 되면 누른다. 9시 55분. 5분 남았다. 커뮤니티를 본다. 유저들이 대기하고 있다. "곧 오픈", "기대된다", "재밌겠다" 댓글들이 올라온다. 잘 되면 좋겠다. 진짜로. 9시 58분. 2분 남았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레드불 때문만은 아니다. 긴장 때문이다. 성훈이가 내 어깨를 친다. "형, 우리 잘했어요. 괜찮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9시 59분. 1분 남았다. 대표님이 손을 마우스에 올린다. 다들 숨을 죽인다. 10시 정각. 대표님이 버튼을 누른다. "서버 오픈되었습니다." 박수가 터진다. 환호성이 나온다. 다들 웃는다. 근데 나는 못 웃는다. 아직 긴장된다. 모니터를 본다. 유저 접속 수가 올라간다. 10명, 50명, 100명, 500명. 에러 로그를 본다. 아직 없다. 다행이다. 1000명 넘어간다. 2000명 넘어간다. 아직도 에러 없다. 조금씩 안심이 된다. 오전 11시, 한 시간 후 런칭한 지 한 시간 지났다. 동접 5000명 넘었다. 에러 로그 몇 개 있다. 근데 크리티컬은 없다. 사소한 버그들이다. 커뮤니티 반응을 본다. "재밌네", "그래픽 좋다", "최적화 잘 됐네" 댓글들이다. 물론 버그 신고도 있다. UI 겹치는 거, 번역 오타, 사소한 것들이다. 알고 있던 것들이다. "이거 QA 안 했냐" 댓글도 보인다. 했다. 50개 체크리스트 다 확인했다. 밤새 테스트했다. 근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도 메인 버그는 없다. 게임은 돌아간다. 결제도 된다. 서버도 안정적이다. 성공이다. 일단은. 낮 12시, 퇴근 팀장님이 말한다. "다들 집 가서 쉬어. 고생했어." 짐을 챙긴다. 가방을 멘다. 사무실을 나선다. 햇빛이 눈부시다. 밤새 실내에만 있어서 그렇다. 지하철을 탄다. 자리에 앉는다. 핸드폰을 본다. 게임 커뮤니티를 확인한다. 여전히 반응이 좋다. 동접이 7000명 넘었다. 다행이다. 근데 피곤하다. 눈이 감긴다. 집에 도착했다. 고시원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눕는다. 이제야 잠이 온다. 런칭 전날 밤에는 못 잤다. 불안해서. 긴장돼서. 혹시 모를 버그 때문에. 근데 이제는 잘 수 있다. 런칭했다. 성공했다. 일단은.새벽 2시에 찾은 버그 하나가 런칭을 살렸다. 그래서 잠을 못 잔다.

기획자의 '이건 스펙이에요?'에 대한 답

기획자의 '이건 스펙이에요?'에 대한 답

오전 10시, 버그인지 스펙인지 출근했다. 빌드 받았다. 설치 중. 어제 개발팀에서 던전 드랍률 수정했다고 했다. 기획서상 에픽 아이템 드랍 확률 3%. 테스트해보라고 전달받았다. 점심 먹기 전까지 200번 돌았다. 에픽 드랍 0개. 버그 리포트 썼다. "에픽 아이템 드랍 안 됨, 200회 테스트 결과 0%" 기획자한테 메신저 왔다. "이건 스펙이에요?" 3년 동안 본 이 질문. 천 번은 넘게 봤다.스펙이란 무엇인가 기획서를 다시 봤다. 3%라고 명확하게 적혀 있다. "스펙은 3%입니다." "아 그럼 버그네요. 개발팀 넘겨주세요." 이게 정상적인 대화다. 근데 가끔은 이렇게 온다. "원래 그렇게 되게 하려고 했는데, 기획서 수정 안 됐나보네요. 스펙이에요." 200번 돌린 내 4시간이 증발했다. 기획서는 2주 전 버전이었다. 수정본은 개발팀 내부 공유만 되고 QA팀한테는 안 왔다. 우리는 구버전 기획서로 테스트하고 있었던 거다. "기획서 최신본 어디 있어요?" "아 제 로컬에 있어요. 올려드릴게요." 올라온 적 없다. 일주일 뒤에 다시 물어봤다. 그제야 올라왔다.현장에서 가장 먼저 아는 사람 CBT 시작 전날. 밤 11시. 신규 보스 테스트 중이었다. 보스 체력이 너무 낮았다. 3인 파티로 30초 만에 잡았다. 기획서상 예상 클리어 타임은 5분. 리포트 올렸다. "보스 체력 비정상적으로 낮음, 30초 컷 가능" 기획자 답변: "스펙이에요. 라이트 유저 배려입니다." 새벽 2시. 잠 못 잔다. 이상하다. 라이트 유저 배려치고는 너무 쉽다. 보스 패턴을 봤다. 3페이즈 스킬이 나와야 하는데 1페이즈에서 끝났다. 체력이 낮아서 페이즈 전환도 안 되는 거였다. 다시 리포트 올렸다. "보스 패턴 미출현, 체력 부족으로 페이즈 전환 불가" 새벽 4시에 답 왔다. "아 이거 버그네요. 수정하겠습니다." CBT는 다음날 오전 10시였다. 6시간 남았다. 수정 빌드는 9시에 왔다. 테스트할 시간 1시간. 제대로 확인 못 했다. CBT 시작했다. 유저들 보스 잡았다. 3페이즈 패턴 안 나온다는 피드백 쏟아졌다. 결국 긴급 점검. 5시간 걸렸다. QA가 미리 말했다. 근데 '스펙이에요'라는 답변 때문에 묻혔다. 현장에서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QA다. 근데 가장 나중에 믿는 사람도 QA다.스펙과 현실 사이 밸런스 테스트가 제일 애매하다. 기획서에는 "적절한 난이도"라고만 적혀 있다. 구체적 수치 없다. 100번 돌았다. 클리어율 20%. 너무 어렵다고 리포트 올렸다. "스펙이에요. 하드코어 컨텐츠입니다." 런칭 후. 유저 클리어율 5%. 게시판에 욕 쏟아진다. "개발자들 테스트 안 해봤냐" 기획자가 말한다. "QA 테스트에서는 괜찮았는데요." 테스트에서는 20%였다. 보고했다. 스펙이라고 했다. 이제 와서 QA 탓이다. "왜 미리 안 알려줬냐" 알려줬다. 스펙이라고 했다. 확률의 지옥 확률 테스트가 제일 힘들다. 가챠 확률 검증. 기획서상 SSR 3%. 1000회 뽑기 테스트 했다. 결과 2.8%. 리포트: "확률 오차 범위 확인 필요" 답변: "스펙이에요. 오차범위입니다." 2000회 더 돌렸다. 총 3000회. 결과 2.6%. 리포트: "3000회 테스트 결과 지속적으로 낮음" 답변: "스펙이에요. 표본이 적습니다." 표본이 적다고? 3000회가? 10000회 돌렸다. 결과 2.5%. 리포트: "10000회 테스트, 확률 명확히 낮음" 답변: "확인해보겠습니다." 결과. 코드 버그였다. 확률 계산식에서 소수점 반올림 오류. 실제 확률 2.5%로 작동 중이었다. 내가 10000번 뽑는 동안 2주 걸렸다. 엑셀에 하나하나 기록했다. 회사에서 3일, 집에서 퇴근 후 매일 2시간씩. 기획자는 "스펙이에요" 세 번 말하는데 30초 걸렸다. 치트 툴로 보는 진실 극한 테스트할 때는 치트 쓴다. 레벨 999, 풀 장비, 모든 스킬 만렙. 이 상태로 콘텐츠 깨본다. 어제 신규 던전 테스트했다. 치트로 깼다. 10초 컷. "보스 밸런스 확인 필요, 최종 스펙으로 10초 클리어 가능" 기획자: "스펙이에요. 그 정도 스펙이면 쉽게 깨야죠." 그 '최종 스펙' 만드는 데 6개월 걸린다. 과금 500만원 이상. 근데 보스가 10초 만에 죽는다? "유저들 6개월 키워서 10초 컷 나면 허무해할 것 같습니다." "스펙이에요." 런칭 3개월 후. 고인물 유저가 풀 스펙 만들었다. 던전 10초 컷 영상 올렸다. 커뮤니티 반응. "이게 무슨 엔드 컨텐츠냐", "6개월 키워서 이거?" 긴급 밸런스 패치. 보스 체력 3배 증가. 유저들 또 화났다. "패치 예고도 없이 갑자기 바꾸냐" QA는 3개월 전에 말했다. 로그가 말해준다 로그 분석은 거짓말 안 한다. 기획자가 신규 스킬 밸런스 괜찮다고 했다. 기획서상 DPS 다른 스킬과 비슷하다고. 실제 플레이해봤다. 이 스킬만 쓰면 다른 스킬 필요 없다. "스킬 A가 너무 강함, 다른 스킬 사용 의미 없음" "스펙이에요. 계산상 밸런스 맞습니다." 로그 뽑았다. 내부 테스트 서버, 100명 플레이 데이터. 스킬 사용 비율: 스킬 A 78%, 나머지 스킬들 합쳐서 22%. "로그상 스킬 A 사용률 78%" "..." "밸런스 재검토 필요합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로그는 정직하다. 근데 로그 뽑는 거 귀찮다. 하루 걸린다. 기획자는 로그 안 본다. QA가 뽑아서 보여줘야 본다. 왜 QA가 기획자 설득 자료까지 만들어야 하나. 회의 시간의 공방 주간 회의. QA 리포트 공유 시간. "이번 주 크리티컬 버그 12건, 밸런스 이슈 8건입니다." 기획자가 하나씩 본다. "이건 스펙이에요." "이것도 스펙이에요." "이건 의도된 겁니다." 8건 중 6건이 '스펙'으로 분류됐다. 남은 2건만 '검토'로 넘어갔다. 회의 끝나고 팀장님이 말했다. "너무 쉽게 스펙이라고 하는 거 아닌가요?" 기획팀 리더가 답했다. "QA가 기획 의도를 모르고 리포트하는 것 같아요." 기획 의도? 기획서에 없는 의도를 어떻게 아나. 다음 회의. 리포트마다 기획서 인용 추가했다. "기획서 버전 1.3, 23페이지, '보스 체력 500만' 명시. 현재 빌드 300만." "아, 기획서가 업데이트 안 됐네요. 400만으로 바뀌었어요." "기획서 최신화 부탁드립니다." "네, 올려놓을게요." 다음 주 회의. 기획서 여전히 1.3 버전. "기획서 업데이트 안 됐습니다." "아, 깜빡했네요. 이번 주에 꼭 올릴게요." 다다음 주. 여전히 1.3 버전. QA는 구버전 기획서로 테스트한다. 기획자는 최신 의도로 개발한다. 중간에서 어긋난다. 누구 책임인가? QA 리포트 신뢰도가 떨어진다. 재현율 100%의 무게 버그 찾았다. 재현율 100%. 매번 발생. "특정 스킬 사용 후 캐릭터 조작 불가, 재현율 100%" 영상 첨부했다. 10번 반복 영상. 기획자: "스펙이에요. 스킬 후딜레이입니다." 후딜레이? 5초 동안 아무것도 못 한다. 그 사이에 맞아 죽는다. "5초 후딜레이는 너무 길어서 사용성 없습니다." "스펙이에요. 강력한 스킬이라 패널티입니다." 런칭 후. 그 스킬 사용률 0.1%. 아무도 안 쓴다. 2개월 뒤 패치. 후딜레이 5초 → 1.5초로 감소. 유저 반응. "이제야 쓸만하네", "처음부터 이렇게 했어야지" QA는 3개월 전에 말했다. 재현율 100%. 영상 증거 첨부. 답변은 "스펙이에요"였다. 런칭 후의 책임 런칭 D-7. 최종 빌드 테스트. 30개 리포트 올렸다. 크리티컬 5개, 메이저 15개, 마이너 10개. 기획팀 회신: 크리티컬 2개만 수정, 나머지는 런칭 후 확인. "런칭 전에 수정 안 하나요?" "일정이 촉박합니다. 런칭 후 모니터링하겠습니다." 런칭했다. 3일 후. 리포트 올렸던 버그들 유저 제보로 쏟아진다. 똑같은 내용. 커뮤니티: "테스트 안 하고 런칭했나?" 회사 공지: "빠른 수정 진행하겠습니다. QA 프로세스 개선하겠습니다." QA 프로세스 개선? QA는 다 찾아서 올렸다. 수정 안 한 건 일정 때문이었다. 근데 책임은 QA로 온다. 팀장님이 말했다. "리포트를 더 강하게 올렸어야 했어." 더 강하게? 크리티컬로 분류했다. 재현율 100% 명시했다. 영상 첨부했다. 뭘 더 하란 건가. 스펙이라는 방패 깨달았다. "스펙이에요"는 편하다. 수정 안 해도 된다. 개발 리소스 안 쓴다. 일정 안 밀린다. QA 리포트를 '스펙'으로 분류하면 해결된다. 리포트가 사라진다. 근데 버그는 안 사라진다. 유저가 발견한다. 그때 가서 급하게 고친다. 긴급 점검한다. 유저는 화낸다. 왜 미리 안 고쳤나? QA가 테스트 안 했나? QA는 했다. 리포트 올렸다. 답은 "스펙이에요"였다. 스펙은 방패다. 당장의 편함을 위한 방패. 근데 그 방패 뒤에서 버그는 자란다. 런칭 후에 폭발한다. QA는 미래의 폭탄을 보는 사람이다. 근데 아무도 안 믿는다. "스펙이에요"라는 말로 묻힌다. 신뢰를 잃는 순간 3년 차가 되니 달라진 게 있다. 리포트 올리기 전에 고민한다. '이거 스펙이라고 할까?' 버그 같은데 기획서에 애매하게 적혀 있으면 안 올린다. 스펙이라는 답변 듣기 싫어서. 확실한 버그만 올린다. 재현율 100%, 명백한 오류만. 근데 그렇게 하니까 놓치는 게 생긴다. '애매한 버그'들. 스펙인지 버그인지 애매한 것들. 유저 경험을 해치는 것들. 예전에는 다 올렸다. 지금은 거른다. QA가 자기 검열한다. 이게 정상인가. 리포트 개수도 줄었다. 예전에 주간 50개 올렸으면 지금은 20개. 팀장님이 좋아한다. "리포트 퀄리티가 올라갔네." 퀄리티가 오른 게 아니다. 포기한 거다. '스펙이에요'라는 답변을 안 받으려고 미리 포기한다. QA의 역할이 뭔가. 버그를 찾는 건가, 기획자 기분 안 상하게 리포트하는 건가. 유저의 목소리 런칭 후 커뮤니티 모니터링이 일이다. 유저들이 올린 버그 제보 본다. 익숙한 내용들. "이거 내가 2달 전에 리포트 올렸는데." 답변 확인한다. "스펙이에요." 유저는 모른다. QA가 미리 찾았다는 걸. 스펙이라고 묻혔다는 걸. 유저 입장에서는 '테스트 안 한 회사'다. 억울하다. 테스트했다. 100번도 넘게 했다. 리포트 올렸다. 근데 유저한테 변명할 수 없다. "저희는 찾았는데 기획팀이 스펙이라고 했어요"라고 말 못 한다. QA는 회사 사람이다. 회사를 대변한다. 변명 못 한다. 속으로만 삭인다. '나는 했어. 내 잘못 아니야.' 근데 결과적으로는 QA 책임이다. 버그 못 잡았다는 평가 받는다. 기획서의 부재 제일 힘든 건 기획서가 없을 때다. "이 기능 테스트해주세요." "기획서 어디 있어요?" "아직 안 썼어요. 대충 이런 느낌이에요." 대충? 뭘 테스트하란 건가. 플레이해본다. 이상한 점 찾는다. 리포트 올린다. "이건 의도한 거예요?" "아뇨, 버그네요." "이건요?" "그건 원래 그래야 해요." 기준이 뭔가. 기획서가 없으니 기준도 없다. 기획자 머릿속에만 있다. 매번 물어봐야 안다. 물어보는 게 일이다. 테스트가 아니라. "이거 의도한 거예요?" 하루에 20번 묻는다. 절반은 버그다. 절반은 스펙이다. 물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QA가 기획자 되는 중이다. 기획 의도를 유추하고, 테스트하고, 확인받는다. 역할이 뭔가 헷갈린다. 숫자로만 말한다 요즘은 숫자로 말한다. 감이 아니라. "이 던전 너무 어려운 것 같아요" → 안 통한다. "100회 테스트, 클리어율 15%" → 통한다. "이 스킬 밸런스 이상해요" → 안 통한다. "200회 테스트, 사용률 82%, 다른 스킬 대비 DPS 300% 높음" → 통한다. 감정은 안 통한다. 데이터만 통한다. 그래서 전부 기록한다. 엑셀 장인 됐다. 던전 클리어 시간, 사망 횟수, 스킬 사용 빈도, 아이템 드랍률. 전부 숫자로 만든다. 그래야 "스펙이에요"를 반박한다. 근데 숫자로 증명해도 안 통할 때 있다. "표본이 적어요", "운이 나빴어요", "테스트 방법이 잘못됐어요" 그럼 또 테스트한다. 표본 늘린다. 방법 바꾼다. QA는 증명하는 사람이다. 버그를 찾는 게 아니라 버그를 증명한다. 증명 못 하면 스펙이 된다. 퇴근 후의 테스트 퇴근했다. 집 왔다. 게임 켰다. 회사에서 못 다 한 테스트 한다. 야근 수당 안 나온다. 그냥 한다. 내일 회의 있다. 데이터 더 필요하다. 200회로는 부족하다. 500회 채워야 한다. 던전 돈다. TV 보면서 반복한다. 기계적으로 플레이한다. 새벽 1시. 500회 채웠다. 데이터 정리한다. 엑셀 저장한다. 자려고 누웠다. 같은 BGM이 머릿속에 맴돈다. 던전 음악. 300번 들었다.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입사 전에는. 지금은 일이다. 숫자고 데이터다. 재미는 사라졌다. 게임을 좋아해서 이 일 시작했다. 지금은 게임이 싫다. 근데 그만둘 수도 없다. 이직하려면 경력 필요하다. 3년은 채워야 한다. 6개월 남았다. 버틴다. 존중받지 못하는 전문성 QA도 전문직이다. 버그 찾는 능력, 재현하는 능력, 데이터 분석, 로그 해석. 3년 하니까 눈이 생긴다. 게임 5분 플레이하면 뭐가 이상한지 보인다. 확률 계산 보면 작동 방식 짐작 간다. 로그 패턴 보면 버그 원인 추론된다. 근데 인정 안 받는다. "QA는 그냥 플레이만 하는 거 아니에요?" "게임하면서 돈 버네, 부럽다." 전문성 없는 취급 받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개발자 연봉 6천. QA 연봉 3400. 절반도 안 된다. 같은 회사, 같은 게임, 같이 만든다. 근데 가치는 절반. 기획자가 "스펙이에요"라고 하면 끝이다. QA 의견은 참고사항. 최종 결정권 없다. 판단은 기획이 한다. QA는 보조. 전문성은 인정받을 때 의미 있다. 안 받으면 그냥 허드렛일이다.

150명 회사, QA는 5명뿐

150명 회사, QA는 5명뿐

우리 팀은 5명이다 회사는 150명이다. 개발자만 60명쯤 된다. 기획자 20명, 아트 30명, 그 외 인프라랑 경영지원. QA는 5명이다. 월요일 아침 회의. 기획팀장이 말한다. "이번 업데이트 규모가 커요. 신규 던전 3개, 캐릭터 2명, 스킬 밸런스 조정 50개." 우리 팀장이 묻는다. "일정이요?" "2주요." 계산해봤다. 던전 하나당 최소 3일. 캐릭터 하나당 2일. 스킬은... 하루 종일 해도 20개? 불가능하다.팀원 소개 팀장은 7년차다. 경험이 많아서 버그를 빨리 찾는다. 근데 회의에 불려다닌다. 실제 테스트는 거의 못 한다. 대리님은 5년차. 빌드 관리랑 툴 세팅 담당. 테스트도 하는데 관리 업무가 많다. 나랑 같은 3년차가 한 명 더 있다. 쟤는 PVP 담당, 나는 PVE 담당. 서로 영역이 달라서 도와주기 힘들다. 막내는 1년차다. 아직 배우는 중. 간단한 것만 맡긴다. 실전 투입 가능한 인원. 나랑 동기, 둘이다. 개발자 60명이 만든 걸. 우리 둘이 테스트한다.오늘의 업무량 아침 10시. 신규 빌드 설치. 30분 걸린다. 10시 30분. 던전 A 테스트 시작. 입장, 전투, 보스, 보상. 최소 10회는 돌려야 한다. 12시. 점심 먹고 온다. 던전 A 아직 6회. 1시. 던전 A 완료. 버그 5개 발견. 리포트 작성 30분. 1시 30분. 던전 B 시작. 근데 동기한테 카톡 온다. "야 캐릭터 테스트 도와줘. 못 끝낸다." 선택해야 한다. 내 일정을 밀거나. 동기를 포기하거나. 둘 다 못 한다. 그래서 둘 다 한다. 4시까지 캐릭터 테스트 도움. 5시부터 밤 10시까지 던전 B. 집에 가서 생각한다. 던전 C는 언제 하지. 내일도 신규 빌드 온다. 3명 몫을 하는 날 목요일이다. 동기가 병가 썼다. 과로로 쓰러졌다. 팀장이 말한다. "PVP 테스트 네가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PVE만 3년 했다. PVP는 처음이다. 점심때 동기한테 전화했다. "야 PVP 어떻게 해?" "테스트 시트 보고 해. 미안." 테스트 시트를 봤다. 80개 항목. 하나에 30분씩 잡아도 40시간. 하루에 끝내야 한다. 런칭이 내일이다. 오후 1시부터 새벽 4시까지. 15시간 했다. 중간에 라면 하나 먹었다. 80개 중에 62개 했다. 18개는 못 했다. 팀장한테 보고했다. "나머지는 런칭 후 모니터링으로 가겠습니다." 이게 맞나 싶다. 근데 다른 방법이 없다.왜 안 뽑나요 회식 자리에서 물었다. "팀장님, QA 한 명만 더 뽑으면 안 돼요?" 팀장이 웃었다. "나도 요청했어. 1년째." 경영진 생각은 이렇다. QA는 비용이다. 개발자는 투자다. 개발자 한 명 연봉 6000만원. QA 한 명 연봉 3500만원. 근데 개발자는 뽑는다. QA는 안 뽑는다. 이유를 들었다. "QA는 외주 쓰면 되잖아요." 외주 QA가 온 적 있다. 2주 계약, 3명. 첫째 날. 빌드 설치 방법 알려줬다. 툴 사용법 알려줬다. 버그 리포트 양식 알려줬다. 하루 날렸다. 둘째 날부터 테스트 시작. 근데 리포트가 이상하다. "캐릭터가 안 움직여요." 이동 키를 몰랐다. "던전이 안 열려요." 선행 퀘스트가 있었다. 하나하나 다시 설명했다. 결국 우리가 다시 테스트했다. 외주비 500만원. 우리 야근 수당 200만원. 회사는 외주가 싸다고 한다. 우리는 그냥 우리가 하는 게 빠르다고 한다. 결론은 안 뽑는다. 런칭 전날 밤 금요일 오후 6시. 최종 빌드가 왔다. 런칭은 월요일 새벽 6시. 주말 내내 테스트해야 한다. 팀원 전원 소집. 근데 대리님이 빠졌다. 아이가 아프다고. 4명이다. 팀장이 역할 분담했다. "막내는 UI 테스트." "동기는 신규 콘텐츠." "겜큐는 전체 플로우." "나는 결제 시스템." 밤 10시. 치킨이 왔다. 회사 지원이다. 새벽 2시. 막내가 졸고 있다. "야 자지 마. 커피 마셔." 새벽 4시. 치명적 버그 발견. 보스 스킬이 안 나간다. 개발자한테 연락했다. 자고 있었다. 1시간 후에 수정본 온다. 새벽 5시. 수정본 테스트. 정상 작동. 새벽 6시. 퇴근. 주말 이틀. 하루 15시간씩 일했다. 야근 수당 나온다. 근데 돈이 문제가 아니다. 버그가 터졌을 때 런칭 후 3일째. 유저들이 난리다. "던전 보상이 안 나와요." "캐릭터 스킬이 먹통이에요." "게임이 튕겨요." CS팀한테 전화 왔다. "QA팀 뭐 했어요?" 우리도 답답하다. 테스트 했다. 근데 못 찾은 거다. 시간이 없었다. 인원이 없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하나. CS팀은 이해 못 한다. 전체 회의. 대표가 말한다. "QA 검수가 부족했습니다." 팀장이 대답 못 한다. 우리도 가만히 있다. 회의 끝나고. 팀장이 말했다. "미안하다. 내가 더 싸워볼걸." 우리 잘못이 아니다. 근데 우리 책임이다. 이게 QA다. 동기가 그만둔다고 했다 어제 저녁. 동기가 술 먹자고 했다. 소주 두 병 먹고. 말했다. "나 이직한다." 어디로. "다른 게임 회사. QA 아니야." 무슨 직무. "CS 기획." 연봉은. "4200. 800 오른다." 부럽다. 근데 뭐라 못 하겠다. "너무 힘들어. 이거 3명이 할 일이 아니야." "맞아." "근데 안 뽑잖아." "응." "너는?" "나는 좀 더 버틸 것 같아." 거짓말이다. 나도 지원서 넣고 있다. 한 달 후. 동기 없으면 나 혼자다. 막내는 아직 신입. 결국 내가 둘 몫 한다. 집에 와서 계산했다. 150명 회사. QA 5명. 5명이 4명 되고. 4명이 3명 된다. 언젠가 나 혼자 남는다. 그전에 나가야 한다.150명이 만든 게임을 5명이 지킨다. 아니, 못 지킨다. 그냥 최선을 다할 뿐이다.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찾는 직업병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찾는 직업병

쉬는 날도 버그가 보인다 주말이다. 친구가 추천한 RPG를 켰다. 캐릭터 생성 화면. 이름 입력창에 특수문자를 넣어봤다. 왜 넣었냐고? 그냥 습관이다. '%#@$' 입력했다. 통과됐다. "이거 나중에 DB 오류 터지겠는데." 혼자 중얼거렸다.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튜토리얼 진행. NPC 대사에 오타가 보였다. "모험가여, 이 마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신걸'이 아니라 '오신 걸'이다. 띄어쓰기 오류.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 폴더명은 '버그모음'. 습관이다.버그 찾는 눈은 못 끈다 친구랑 온라인 게임 했다. "야, 이거 재밌다. 그래픽도 좋고." 나는 UI를 보고 있었다. 스킬 쿨타임 표시가 0.1초 늦게 갱신된다. 미세하게. "어, 이거 타이머 버그 아닌가." "뭐가?" "아니 쿨타임이..." 설명하다가 멈췄다. 친구는 뭐가 문젠지 모른다. 게임 즐기는 거다. 나만 일하고 있다. 던전 클리어했다. 보상 획득 팝업. 텍스트가 박스를 삐져나왔다. "텍스트 오버플로우네." 또 스크린샷. 친구는 다음 던전 가자고 했다. 나는 같은 던전 다시 들어가서 재현율 확인했다. 100%. 버그 맞다. 재밌어야 하는데 일이 됐다. 회사에서 하는 테스트랑 똑같다. 스킬 연계 써봤다. A스킬 → B스킬 → C스킬. C스킬 모션이 씹혔다. 타이밍 문제인가. 다시 해봤다. 또 씹혔다. "이거 콤보 입력 버퍼가..." 친구가 물었다. "너 일하냐?" 맞다. 일하고 있다. 쉬는 날인데.모바일도 예외 없다 지하철에서 모바일 게임 한다. 가챠 돌렸다. SSR 나왔다. 기쁨보다 먼저 든 생각. "이거 확률 표기 맞나?" 공지 확인했다. 2.5%라고 적혀있다. 나는 가챠 100번 돌렸다. SSR 5번 나왔다. 5%. "확률이 이상한데." 표본이 적어서 그런가. 기록을 시작했다. 엑셀 앱 켰다. 가챠 결과 입력. 날짜, 시간, 등급, 누적 횟수. 200번 돌렸다. SSR 9번. 4.5%. 300번. SSR 11번. 3.67%. "점점 2.5%로 수렴하네." 확률은 정상이다. 나는 뭐 하는 거지. 게임 즐기는 게 아니라 통계 내고 있다. 직업병이다. 친구가 카톡 보냈다. "너 그 게임 해봤어?" "응, 재밌어. 근데 확률은 정상이야." "...뭔 소리야?" 설명 안 했다. 점심시간. 회사 휴게실에서 모바일 게임 켰다. 이벤트 던전 입장. 로딩이 길다. 20초. "로딩 최적화 안 했네." 클리어했다. 보상 지급 애니메이션. 3초. "스킵 버튼 없으면 불편한데." 유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다. QA 입장이다. 게임을 못 즐긴다. 평가하게 된다.직업병의 끝 스팀 세일. RPG 하나 샀다. 평가 '매우 긍정적'. 설치하고 실행. 언어 설정 한국어 선택. 튜토리얼 시작. 첫 대사. "용사여, 일어나라." 번역이 어색하다. 일어나라가 아니라 깨어나라가 맞다. 메모했다. 전투 시작. 적 처치. 경험치 획득 표시. "+120 XP" 숫자가 UI 중앙이 아니라 살짝 왼쪽으로 치우쳤다. 정렬 오류. 또 메모. 아이템 습득. 인벤토리 열었다. 아이템 설명에 띄어쓰기가 없다. "체력을50회복한다." '체력을 50 회복한다'가 맞다. 스크린샷. 1시간 플레이했다. 버그 리스트 15개. 게임 스토리? 기억 안 난다. 전투 재미? 모르겠다. 버그만 찾았다. 환불하고 싶었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나다. 결국 환불했다. 사유에 뭐라고 쓸까 고민했다. "게임은 좋은데 제가 즐길 수 없습니다." 진짜 이유다. 직업병 때문에. 2시간 안에 환불했다. 플레이 시간 1시간 16분. 그 시간 동안 버그 20개 찾았다. 보고서는 안 썼다. 돈 안 받으니까. 친구가 물었다. "왜 환불했어? 재밌다던데." "재밌는지 모르겠어. 버그만 보여." "병원 가봐."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끌 수 없는 스위치 회사에서 테스트할 때는 괜찮다. 일이니까. 문제는 집에서다. 유튜브에서 게임 리뷰 본다. 유튜버가 플레이하는 화면. "어? 저기 UI 겹쳤는데." 댓글 달았다. "3:24 UI 버그 있네요." 좋아요 5개. 답글 하나. "ㄹㅇ 저것도 못 잡냐" 나만 보는 게 아니구나. 친구 집. 콘솔 게임 같이 한다. 친구는 스토리 보는 중. 나는 배경 오브젝트를 본다. 나무가 공중에 떠 있다. 배치 오류. "저거 봐. 나무 떴어." "그게 중요해?" 중요하다. 내 눈에는.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봤다. 한 장면에서 캐릭터 손가락이 6개였다. 1초도 안 되는 장면. "작화 오류." 옆에 앉은 사람이 쳐다봤다. 조용히 하라는 눈빛. 미안하다. 습관이다. 회사 동료랑 이야기했다. "나 요즘 게임 못 즐기겠어. 버그만 보여." "나도. 직업병이지 뭐." "끌 수 있는 방법 없나?" "없어. 나도 찾는 중."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게임 QA 3년 차. 게임은 여전히 좋아한다. 근데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쉬는 날에도 일한다. 끌 수 없는 직업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