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 QA의 회의

건강검진 결과, QA의 회의

건강검진 결과지

회사에서 건강검진 받으라고 했다. 작년 11월에 예약했는데 런칭 때문에 두 번 미뤘다. 오늘 드디어 갔다.

오전 7시 금식 상태로 병원 도착. 피 뽑고 엑스레이 찍고 위내시경. 수면 안 하고 했다. 3만원 아끼려고. 목구멍에 카메라 들어갈 때 눈물 났다.

검사 끝나고 의사 상담. 결과지 보더니 한숨 쉰다.

“수면 패턴이 안 좋네요. 야근 많이 하세요?”

“CBT 시즌엔 매일요.”

“간 수치 높아요. 술 드세요?”

“에너지 드링크요.”

의사가 펜 내려놨다.

빨간 줄 세 개

결과지에 빨간 줄 세 개.

간 수치 - 정상 범위 초과 위 - 경미한 염증 혈압 - 고혈압 전 단계

27살 남자 평균치보다 다 높다고 했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식사, 스트레스 관리 필요합니다.”

웃음 나왔다. 충분한 수면? 지난달 CBT 때 사흘 동안 총 8시간 잤다. 하루 평균이 아니다. 사흘 합쳐서.

규칙적인 식사? 점심은 테스트하면서 김밥 한 줄. 저녁은 야근 시작하면서 컵라면. 밤 11시쯤 치킨 시켜 먹고.

스트레스 관리? 런칭 전날 밤 11시에 치명적 버그 발견하면 어떻게 관리하냐고.

“생활 습관 개선 안 하시면 30대에 문제 생깁니다.”

알고 있다. 근데 어떻게 하냐고.

CBT의 기억

지난달 CBT가 지옥이었다.

2주 동안 하루 16시간씩 테스트. 주말도 없었다. 유저들 피드백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버그 찾고 리포트 쓰고 재현하고.

에너지 드링크를 하루에 다섯 캔 마셨다. 레드불, 핫식스, 몬스터. 냉장고에 쟁여놨다. 동료 하나는 하루에 여덟 캔 마셨다.

밤 3시에 눈이 침침했다. 모니터가 세 개로 보였다. 화장실 가서 찬물로 세수했다. 돌아와서 다시 테스트.

새벽 5시쯤 책상에 엎드려 잤다. 30분 자고 일어났다. 목이 빳빳했다. 계속했다.

아침 7시에 출근하는 기획자한테 인수인계. “여기까지 확인했어요. 이 버그는 재현율 100%고요. 로그는 메일로 보냈어요.”

집 가서 씻지도 않고 쓰러져 잤다. 12시간 자고 일어났다. 다음 날 또 출근.

2주 끝나고 몸무게 재봤다. 3킬로 빠졌다. 밥을 안 먹어서가 아니다. 스트레스로 녹았다.

팀장의 말

검진 결과 팀장한테 보고했다.

“건강 챙겨야지.”

그 말뿐이었다.

다음 CBT는 다음 달이다. 신규 콘텐츠 3개 추가된다. 테스트 기간은 2주. 또 밤샐 거다.

“이번엔 좀 일찍 끝낼 수 있게 해볼게요.”

팀장이 말했다. 근데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 했다. 그 전에도.

결국 개발 일정이 밀린다. 빌드가 늦게 온다. QA는 시간 없다. 야근한다.

악순환이다.

회사는 ‘워라밸’ 강조한다. 인사팀에서 메일 온다. ‘저녁 있는 삶’ 캠페인. 웃긴다. 우리 팀 평균 퇴근 시간 10시.

CBT 시즌엔 퇴근이 없다.

동료의 입원

작년에 같은 팀 형이 쓰러졌다.

CBT 마지막 날 새벽 4시. 갑자기 “어지럽다” 하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119 불렀다.

과로로 인한 탈수 증세. 병원에서 링거 맞고 하루 입원했다. 퇴원하고 다음 날 출근했다. 런칭이 3일 남았으니까.

그때 생각했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구나.’

근데 어쩌냐. 일은 해야 하니까.

형은 그 프로젝트 끝나고 퇴사했다. “몸 망가지면서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지금은 작은 회사 다닌다. 연봉 좀 줄었는데 야근은 없다고.

부럽다.

약국 영수증

검진 끝나고 약국 갔다.

위장약, 종합 비타민, 간 영양제. 의사가 추천한 거다.

계산하니까 8만 원. 한 달 치다.

연봉 3400만원에 월 40만원 고시원 살면서 한 달에 8만 원을 약에 쓴다. 이상하다.

집에 와서 약 먹었다. 식후 30분, 하루 두 번.

근데 다음 날 야근하면서 저녁 거르고 밤 11시에 치킨 먹었다. 약은 못 먹었다. 공복에 먹으면 안 된다고 했으니까.

약 먹는 것도 규칙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불가능하다.

엄마한테 말 못 하는 것

이번 주말에 엄마한테 전화 왔다.

“회사 어때? 힘들지는 않고?”

“괜찮아요.”

거짓말이다.

건강검진 결과는 말 안 했다. 걱정하실 거니까.

엄마는 내가 ‘게임회사’ 다닌다는 것만 안다. 게임 QA인지,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CBT 때 어떤지는 모른다.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거다.

“엄마 아는 애 아들도 게임회사 다니는데 돈 잘 번대. 너도 열심히 해.”

그 애는 아마 개발자일 거다. QA는 돈 못 번다.

“네, 열심히 할게요.”

전화 끊고 나서 씁쓸했다.

27살에 부모님한테 걱정 끼치기 싫어서 거짓말한다. 초라하다.

다음 CBT까지 3주

이번 CBT 준비 시작됐다.

어제 회의에서 일정 나왔다. 빌드는 2주 후, CBT 시작은 3주 후.

“이번엔 미리미리 준비해서 야근 없게 합시다.”

PM이 말했다. 다 웃었다. 불가능한 거 알고 있다.

테스트 케이스 짜기 시작했다. 신규 던전 3개, 신규 보스 5개, 신규 아이템 200개. 확률 검증만 일주일 걸린다.

벌써부터 피곤하다.

건강검진 결과지는 책상 서랍에 넣어뒀다. 가끔 꺼내 본다.

‘충분한 수면, 규칙적인 식사, 스트레스 관리’

웃긴다. 게임 QA한테 충분한 수면이 어디 있냐고.

그래도

이 일이 싫은 건 아니다.

버그 찾는 건 재밌다. 유저들이 즐겁게 게임하려면 우리가 필요하다. 그건 안다.

근데 몸은 솔직하다.

27살에 간 수치 높고 위염 있고 혈압 올라간다. 30살 되면 어떻게 되냐.

이 업계에서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동료들 봐도 30대 중반 넘어가는 QA는 거의 없다. 다들 이직하거나 직무 전환하거나.

나도 그럴 것 같다.

근데 지금은 일단 다음 CBT를 준비한다. 에너지 드링크 사 놓고, 비상약 챙겨 놓고.

건강검진 결과지는 다시 서랍에 넣는다.

다음 검진은 1년 후다. 그때도 빨간 줄이 있을 거다. 아마 더 많아질 거다.


충분한 휴식? CBT 끝나고 생각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