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칭 전야, 잠을 못 자는 이유
- 28 Dec, 2025
런칭 전야, 잠을 못 자는 이유
오후 11시, 불이 켜진 사무실
퇴근 시간은 6시였다. 지금 11시다.
사무실에 불이 다 켜져 있다. 개발팀, 기획팀, 운영팀, QA팀 모두 남아 있다. 내일이 런칭이다. 정식 오픈. 2년 반 만든 게임이다.
기획자 민수형이 모니터 앞에서 엑셀을 보고 있다. 개발자 준호형은 코드를 계속 고치고 있다. 운영팀 누나들은 공지사항을 쓴다 지운다 반복한다.
우리 QA팀도 마찬가지다.
테스트를 계속하고 있다. 오후 8시에 올라온 빌드를 받았다. “마지막 수정본”이라고 했다. 근데 벌써 세 번째 “마지막”이다.

런칭 전날 밤의 의식
런칭 전날 밤은 항상 이렇다.
CBT 때도 그랬다. OBT 때도 그랬다. 지금도 똑같다. 다들 남아서 일한다. 점검한다. 확인한다.
“혹시 모를 버그”를 찾는다.
근데 솔직히 이 시간에 버그 찾아봤자다. 고칠 시간이 없다. 그래도 찾는다. 안 찾을 수가 없다.
내일 오전 10시에 서버가 오픈된다. 유저들이 들어온다. 그때 버그가 터지면? 생각하기 싫다.
나는 지금 신규 유저 플로우를 점검하고 있다. 튜토리얼부터 10레벨까지. 계정을 새로 만들어서 처음부터 플레이한다. 벌써 다섯 번째 계정이다.
같은 대사를 다섯 번 본다. 같은 전투를 다섯 번 한다. 지겹다. 근데 해야 한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것들
체크리스트가 있다.
- 튜토리얼 스킵 버그 없는지
- 신규 유저 보상 제대로 나오는지
- 상점 결제 정상 작동하는지
- 로그인 서버 부하 견딜 수 있는지
- 채팅 욕설 필터 작동하는지
리스트가 50개다. 다 확인해야 한다.
결제 테스트를 한다. 실제로 돈을 쓰는 건 아니고 테스트 결제다. 1000원 패키지를 산다. 아이템이 들어온다. 로그를 확인한다. 정상이다.
10000원 패키지를 산다. 보너스 재화가 들어와야 한다. 들어왔다. 정상이다.
근데 불안하다. 혹시 실제 결제에서는? 혹시 동시 접속 1000명 넘으면?
옆자리 성훈이가 말한다.
“형, 상점 UI 겹치는 거 아직도 안 고쳐졌어요.”
알고 있다. 해상도 특정 비율에서 버튼이 겹친다. 기획팀한테 말했다. 개발팀한테도 말했다. “우선순위 낮음”이라고 했다.
런칭하면 유저들이 신고할 거다. 커뮤니티에 스크린샷 올라올 거다. “이게 정식 게임이냐”는 댓글 달릴 거다.
우리 탓이 된다.

자정이 지났다
12시 30분이다.
팀장님이 편의점 가신다고 한다. 뭐 필요한 거 있냐고 묻는다. 다들 에너지 음료 시킨다. 나도 레드불 달라고 했다.
오늘만 벌써 세 개 마셨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근데 안 마시면 졸린다.
준호형이 커밋을 올렸다. “긴급 수정”이라고 한다. 또 빌드를 받아야 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이다.
빌드 받는 데 20분 걸린다. 설치하는 데 10분 걸린다. 그동안 화장실 갔다 왔다.
거울을 봤다. 눈이 충혈됐다. 머리가 떡졌다. 얼굴이 푸석하다. 27살 맞나 싶다.
세수를 했다. 정신이 좀 든다. 아니, 안 든다. 피곤하다.
새벽 2시의 발견
테스트를 계속한다.
신규 빌드에서 퀘스트를 진행한다. 5번 퀘스트까지 정상이다. 6번 퀘스트를 받는다.
NPC를 클릭한다. 대화창이 안 뜬다.
다시 클릭한다. 안 뜬다.
게임을 껐다 킨다. 다시 해본다. 또 안 뜬다.
심장이 멈춘다.
“형, 이거 좀 봐요.”
성훈이를 부른다. 성훈이도 해본다. 안 된다. 빌드 문제다.
기획팀 민수형을 부른다. 민수형이 당황한다. 준호형을 부른다. 준호형이 로그를 본다.
“스크립트 파일이 안 들어갔네.”
새벽 2시에 발견한 크리티컬 버그다. 메인 퀘스트가 진행이 안 된다. 게임을 못 한다.
지금 고쳐야 한다.
준호형이 파일을 넣는다. 다시 빌드한다. 20분 기다린다.
팀장님이 편의점에서 돌아왔다. 레드불을 나눠준다. 상황을 보고한다. 팀장님이 한숨 쉰다.
“잘 찾았어. 지금 고치는 거지?”
네. 고치고 있습니다.

새벽 3시, 잠이 안 오는 이유
빌드가 올라왔다. 다시 테스트한다.
이번엔 된다. 퀘스트가 진행된다. NPC 대화가 뜬다. 정상이다.
처음부터 다시 해본다. 또 된다. 세 번 해본다. 문제없다.
“됩니다.”
보고를 올린다. 준호형이 고맙다고 한다. 민수형이 수고했다고 한다.
근데 안심이 안 된다.
혹시 또 다른 버그가 있으면? 혹시 우리가 못 찾은 게 있으면? 아까 그것도 거의 못 찾을 뻔했다. 6번 퀘스트까지 안 갔으면 몰랐을 거다.
런칭하고 유저들이 찾으면?
생각하기 싫다.
새벽 4시, 그래도 계속한다
계속 테스트한다.
7번 퀘스트, 8번 퀘스트, 10번 퀘스트까지. 전부 정상이다.
던전에 들어간다. 몬스터를 잡는다. 보상을 받는다. 정상이다.
상점에 간다. 아이템을 산다. 사용한다. 정상이다.
파티를 만든다. 성훈이 계정을 초대한다. 같이 던전 간다. 정상이다.
체크리스트를 확인한다. 40개 완료했다. 10개 남았다.
성훈이가 졸고 있다. 의자에 기대서 눈을 감았다. 깨우지 않는다. 나도 졸린데 성훈이는 더 졸릴 거다.
민수형도 책상에 엎드려 있다. 준호형은 아직도 모니터를 보고 있다. 운영팀 누나들은 회의실에서 자고 있다.
다들 지쳤다.
근데 내일이면 끝난다. 아니, 오늘이다. 몇 시간 후면 런칭이다.
새벽 5시, 체크리스트 완료
마지막 항목을 확인한다.
“서버 시간 동기화 테스트”. 게임 시간이랑 실제 시간이 맞아야 한다. 일일 퀘스트 리셋 시간, 출석 보상 시간, 이벤트 시작 시간. 전부 확인한다.
정상이다.
체크리스트 50개 전부 완료했다.
팀장님한테 보고한다. 팀장님이 고생했다고 한다. 이제 좀 쉬라고 한다.
근데 못 쉰다. 불안하다.
성훈이를 깨운다. “형, 다 했어요?”
응, 다 했어.
“그럼 집 갈까요?”
집 가도 잠 못 잔다. 그냥 여기 있는다.
새벽 6시, 런칭 2시간 전
사무실에 사람들이 하나둘 출근한다.
대표님도 왔다. 런칭 보려고 일찍 온 거다. 개발팀 다른 팀원들도 온다. 디자인팀도 온다.
다들 긴장한 얼굴이다.
운영팀에서 커피를 내린다. 다 같이 마신다. 말이 없다.
대표님이 말한다.
“2년 반 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 잘 되면 좋겠습니다.”
박수가 나온다. 근데 어색하다. 다들 긴장해 있다.
나도 긴장된다. QA는 끝났는데 긴장된다. 혹시 모를 버그. 혹시 모를 문제. 서버가 터지면? 결제가 안 되면? 게임이 튕기면?
우리 탓이 된다.
오전 8시, 최종 점검
마지막 점검을 한다.
운영팀에서 서버 상태를 확인한다. 개발팀에서 로그를 본다. QA팀에서 테스트 서버에 다시 접속한다.
전부 정상이다.
공지사항이 올라간다. “오전 10시 정식 오픈”.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온다. 유저들이 기대한다는 댓글을 단다.
기대가 부담이 된다.
성훈이가 말한다.
“형, 떨려요.”
나도 떨린다. 손이 떨린다.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아니다. 긴장해서 그렇다.
준호형이 농담한다.
“우리 이력서 준비해야 하나.”
웃기려고 한 말인데 안 웃긴다. 진짜 그럴 수도 있다. 런칭이 망하면. 버그가 터지면.
오전 9시 50분, 10분 남았다
서버 오픈 10분 전이다.
사무실에 다 모였다. 개발팀, 기획팀, 운영팀, QA팀, 디자인팀, 마케팅팀. 전부 모였다.
대표님이 카운트다운을 하자고 한다.
모니터에 서버 관리 창이 떠 있다. 오픈 버튼이 보인다. 10시 되면 누른다.
9시 55분. 5분 남았다.
커뮤니티를 본다. 유저들이 대기하고 있다. “곧 오픈”, “기대된다”, “재밌겠다” 댓글들이 올라온다.
잘 되면 좋겠다. 진짜로.
9시 58분. 2분 남았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레드불 때문만은 아니다. 긴장 때문이다.
성훈이가 내 어깨를 친다.
“형, 우리 잘했어요. 괜찮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다.
9시 59분. 1분 남았다.
대표님이 손을 마우스에 올린다. 다들 숨을 죽인다.
10시 정각.
대표님이 버튼을 누른다.
“서버 오픈되었습니다.”
박수가 터진다. 환호성이 나온다. 다들 웃는다.
근데 나는 못 웃는다. 아직 긴장된다.
모니터를 본다. 유저 접속 수가 올라간다. 10명, 50명, 100명, 500명.
에러 로그를 본다. 아직 없다. 다행이다.
1000명 넘어간다. 2000명 넘어간다.
아직도 에러 없다.
조금씩 안심이 된다.
오전 11시, 한 시간 후
런칭한 지 한 시간 지났다.
동접 5000명 넘었다. 에러 로그 몇 개 있다. 근데 크리티컬은 없다. 사소한 버그들이다.
커뮤니티 반응을 본다.
“재밌네”, “그래픽 좋다”, “최적화 잘 됐네” 댓글들이다.
물론 버그 신고도 있다. UI 겹치는 거, 번역 오타, 사소한 것들이다. 알고 있던 것들이다.
“이거 QA 안 했냐” 댓글도 보인다.
했다. 50개 체크리스트 다 확인했다. 밤새 테스트했다. 근데 완벽할 수는 없다.
그래도 메인 버그는 없다. 게임은 돌아간다. 결제도 된다. 서버도 안정적이다.
성공이다. 일단은.
낮 12시, 퇴근
팀장님이 말한다.
“다들 집 가서 쉬어. 고생했어.”
짐을 챙긴다. 가방을 멘다. 사무실을 나선다.
햇빛이 눈부시다. 밤새 실내에만 있어서 그렇다.
지하철을 탄다. 자리에 앉는다.
핸드폰을 본다. 게임 커뮤니티를 확인한다. 여전히 반응이 좋다. 동접이 7000명 넘었다.
다행이다.
근데 피곤하다. 눈이 감긴다.
집에 도착했다. 고시원 방에 들어왔다.
침대에 눕는다.
이제야 잠이 온다.
런칭 전날 밤에는 못 잤다. 불안해서. 긴장돼서. 혹시 모를 버그 때문에.
근데 이제는 잘 수 있다.
런칭했다. 성공했다. 일단은.
새벽 2시에 찾은 버그 하나가 런칭을 살렸다. 그래서 잠을 못 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