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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10시 출근, 그 환상과 현실

아침 10시 출근, 그 환상과 현실

10시 출근이라는 환상 처음 면접 봤을 때다. "저희는 10시 출근입니다." 이 말에 바로 끌렸다. 9시 출근하는 친구들 보면서 '난 좀 다르지' 했다. 아침 여유롭게 일어나서 밥 먹고 출근. 완전 화이트 기업 아닌가. 입사 일주일은 진짜 그랬다. 9시에 일어나서 편의점 삼각김밥 먹고. 지하철도 한산했다. 10시에 회사 도착하면 다른 회사 사람들은 이미 일하는 중. 나만 여유롭게 커피 한 잔. "10시 출근 부럽다" 친구들이 말했다. 그때는 나도 좋았다. 진짜로.현실은 CBT 두 달 지나니까 알았다. 10시 출근의 진실. CBT 일정이 잡혔다. "이번 주는 좀 바쁠 겁니다." 팀장 말. 좀이 아니었다. 월요일부터 밤 10시 퇴근. 화요일은 12시. 수요일은 아예 새벽 3시. "10시 출근이니까 괜찮죠?" 아니다. 전혀 괜찮지 않다. 새벽 3시 퇴근하고 10시 출근. 7시간인데 이동 시간 빼면 5시간. 씻고 자면 3시간. 이게 10시 출근의 함정이다. 9시 출근 회사는 6시 퇴근이다. 야근해도 8시, 9시. 우리는 10시 출근에 밤 12시 퇴근이 기본. 계산해보면 우리가 더 오래 일한다. CBT 기간은 지옥이다. 유저들이 게임 시작하는 시간. 저녁 7시부터가 진짜 근무 시간. 버그 리포트가 쏟아진다. 재현 테스트 돌리고, 로그 확인하고, 개발팀한테 전달하고. "이거 긴급 버그예요. 오늘 안에 수정 가능할까요?" 불가능한 걸 알면서 묻는다. 개발자도 야근한다. 다 같이 죽는다.주말의 의미 금요일 저녁. 일반 회사 사람들은 퇴근한다. 우리는 주말 테스트 준비. "이번 주말에 신규 콘텐츠 빌드 나옵니다." 토요일 출근 확정. 일요일도 마찬가지. CBT 기간에 주말은 없다. 토요일 10시 출근. 평일이랑 똑같다. 차이는 지하철이 한산하다는 것. 회사 가는 사람이 나뿐. 친구들은 놀러 간다. 카톡이 온다. "야 오늘 강남 나와." 못 간다. "주말인데 야근이야?" 야근이 아니라 그냥 근무다. 일요일도 출근하면 연차가 하나 생긴다. 대신 쓸 수가 없다. CBT 끝나고 런칭 준비. 런칭 끝나고 버그 수정. 다음 CBT 준비. 무한 반복. 작년에 연차 10개 날렸다. 못 쓰고 없어진 거다. "왜 안 써요?" 쓸 타이밍이 없었다. 주말 근무는 수당 나온다. 1.5배. 그래도 평일 야근보다는 낫다. 평일 야근은 기본 급여에 포함이라는 마법의 논리.야근 수당의 한계 입사할 때 연봉 3400만원. 월급 283만원. 여기서 세금 빼면 250만원 정도. 야근 수당이 있다. 한 시간에 15000원. 밤 10시까지 일하면 3시간. 45000원. 한 달 20일이면 90만원. 처음에는 좋았다. 월급이 340만원. 세전이지만 그래도 많다고 느꼈다. 문제는 한계가 있다는 것. 야근 수당은 월 100만원까지. 그 이상은 안 나온다. CBT 때는 하루 5시간씩 야근한다. 한 달이면 150만원어치. 50만원은 그냥 사라진다. "원래 그런 거예요." 선배가 말했다. 다들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계산해봤다. 시급으로 치면 최저시급이랑 비슷하다. 대졸 3년차가 최저시급. 이게 맞나. 친구는 SI 회사 다닌다. 연봉 4000만원. 야근은 우리보다 적다. "게임 회사가 좋지 않냐?"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다른 친구는 대기업 다닌다. 연봉 5000만원. 9시 출근 6시 퇴근. "10시 출근 부럽다." 전혀 안 부럽다고 말 못 한다. 야근 수당 때문에 버틴다. 그것마저 없으면 못 버틴다. 250만원으로 서울에서 살 수 없다. 건강이 무너진다 새벽 3시 퇴근이 일주일 계속되면 몸이 이상해진다. 아침에 일어나면 눈이 붓는다. 소화가 안 된다. 편의점 도시락만 먹어서 그런가.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그런가. 작년 겨울 CBT 때다. 한 달 내내 밤샘했다. 감기 걸렸다. 병원 갈 시간 없어서 약국 약으로 버텼다. 안 나았다. 두 달 기침했다. 회사에 약 먹는 사람이 많다. 소화제, 두통약, 영양제. 다들 책상에 약통이 있다. "젊으니까 괜찮아요." 팀장 말. 35살인데 벌써 허리 안 좋다고 한다. 나는 27살. 8년 후면 나도 그렇게 되나. 카페인 중독이다. 하루에 커피 5잔. 에너지 드링크 2캔. 안 마시면 집중이 안 된다. 밤에 잠도 잘 안 온다. 건강검진 결과 나왔다. "간 수치가 높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데 간 수치가 높다. 야근 때문이라고 한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한다. 10시 출근해서 새벽 2시 퇴근. 16시간 일한다. 일주일이면 80시간. 한 달이면 320시간. 정상이 아니다. 게임이 일이 되면 원래 게임을 좋아했다. RPG 덕후다. 게임 회사 들어온 이유다. 지금은 게임이 보이지 않는다. 버그만 보인다. 던전 들어가면 벽 충돌 체크한다. NPC 대화하면 오타 찾는다. 아이템 먹으면 확률 계산한다. 친구들이랑 게임하면 재미없다. "이거 밸런스 이상한데." 습관적으로 말한다. 친구들이 싫어한다. "그냥 게임이야. 즐겨." 즐길 수가 없다. 직업병이다. 좋아하는 게임 시리즈가 있었다. 신작 나왔다. 샀다. 한 시간 했다. 끄고 다시 안 켰다. 왜냐면 회사에서 똑같은 장르 테스트한다. 퇴근하고 또 같은 거 할 수 없다. "게임하면서 돈 버네 좋겠다." 제일 듣기 싫은 말이다. 게임이 아니라 노동이다. 같은 던전 100번 돌면 게임이 아니다. CBT 때 유저 플레이 보면 부럽다. 재미있어 한다. 나는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버그 터질까 봐 불안하다. 런칭하고 유저들 반응 좋으면 뿌듯하다. 일주일 정도. 그 다음부터는 다음 프로젝트 시작. 또 테스트. 반복. 그래도 못 그만두는 이유 이직 생각한다. 매일 생각한다. 문제는 이력서다. "게임 QA 3년." 이게 경력인가. 다른 회사 가도 QA다. 연봉 비슷하다. 야근도 비슷하다. 개발자 되고 싶다. 코딩 공부 시작했다. 퇴근하고 한 시간씩. 주말에 두 시간씩. 진도가 안 나간다. 너무 피곤하다. 같은 팀 선배가 작년에 나갔다. 다른 게임 회사 갔다. QA로. 연봉 400만원 올랐다. 그게 다다. 또 다른 선배는 게임 관뒀다. 일반 회사 CS팀 갔다. "거기는 6시 칼퇴근이야." 부럽다. 근데 게임은 재밌다. 가끔. 신규 콘텐츠 처음 테스트할 때. 아무도 안 해본 거 내가 먼저 한다. 그건 좋다. 런칭 전 긴장감도 나쁘지 않다. 유저들 좋아하는 거 보면 보람 있다. 그리고 동료들. 같이 야근하는 사람들. 새벽 2시에 치킨 시켜 먹으면서 수다. 그런 게 좋다. 돈이 문제다. 3년 차에 3400만원. 5년 차도 4000만원 안 된다. 결혼은 어떻게 하나. 집은 어떻게 사나. "게임 업계가 원래 그래요." 다들 말한다. 맞다. 원래 그렇다. 그게 문제다. 10시 출근의 진실 10시 출근은 환상이다. 진짜는 이렇다. 10시 출근 새벽 2시 퇴근. 주말 없음. 야근 수당 한계 있음. 건강 무너짐. 게임이 일이 되는 것. 그래도 출근은 10시다. 친구들한테 "10시 출근이야" 말한다. 부러워한다. 진실은 말 안 한다. 복잡하니까. 다음 주도 CBT다. 또 밤샘이다. 월요일 10시 출근해서 화요일 새벽 3시 퇴근. 그리고 화요일 10시 또 출근. 이게 10시 출근의 현실이다.10시 출근,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재현율이요' - QA의 일상 용어 사전

'재현율이요' - QA의 일상 용어 사전

"재현율이요" - QA의 일상 용어 사전 입에 붙은 말들 출근하면 입에서 튀어나온다. "재현율이요." 동료가 "어제 버그 봤는데"라고 하면 자동으로 나온다. "재현율이요?" 점심 먹다가도 나온다. 식당 직원이 "오늘 치킨 맛있어요"라고 하면 "재현율이요?" 아니 이건 좀 아니지. 그런데 못 고친다. 3년 동안 하루에 100번씩 쓴 말이다. 입에 각인됐다. 재현율. 버그가 다시 발생하는 확률. 100%면 무조건 터진다는 뜻. 50%면 두 번에 한 번 터진다는 뜻. QA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다. 재현율 낮으면 개발자가 못 고친다. 로그에 안 남으니까. 재현율 높으면 우선순위 올라간다. 무조건 터지니까. 그래서 버그 리포트 쓸 때 제일 먼저 확인한다. 10번 해봐서 10번 터지면 100%. 10번에 3번이면 30%. 입버릇이 됐다. 편의점에서 카드가 안 찍혔다. "재현율 확인해봐야겠네요." 알바생이 이상하게 쳐다본다.이건 스펙이에요? 기획자한테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다. "이건 스펙이에요?" 던전에서 몬스터가 벽을 뚫고 나왔다. 버그 같은데 확신이 안 선다. 기획 의도일 수도 있다. 물어본다. "이거 스펙이에요?" 기획자가 답한다. "아뇨, 버그요." 리포트 쓴다. 스킬 쿨타임이 이상하다. 5초인데 3초만에 돌아온다. 버그 같은데 패치노트를 못 봤을 수도 있다. 또 물어본다. "이거 스펙 변경됐어요?" 기획자가 답한다. "아 그거 어제 바꿨어요." 리포트 안 쓴다. 스펙. 기획 명세서. 게임이 '이렇게 작동해야 한다'고 적힌 문서. QA의 바이블이다. 근데 이게 맨날 바뀐다. 어제 본 스펙이랑 오늘 본 스펙이 다르다. 기획자가 계속 수정한다. 그래서 확인해야 한다. 내가 본 게 버그인지, 의도인지. 하루에 20번은 물어본다. "이건 스펙이에요?"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도 나온다. 친구가 "야 너 어제 9시에 온다며?"라고 한다. 나는 답한다. "그거 스펙 변경됐어." 친구가 멍하니 쳐다본다.로그 확인해볼게요 개발자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로그 확인해볼게요." 버그 리포트 올리면 개발자가 묻는다. "로그 있어요?" 있으면 "네, 첨부했어요." 없으면 "로그 확인해볼게요." 로그. 게임 내부에서 일어난 일들의 기록. 누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다 적혀있다. 버그를 고치려면 로그가 필요하다. 어디서 터졌는지 알아야 고친다. 근데 로그가 없는 버그도 있다. 재현율 낮은 버그. 한 번 터지고 안 터진다. 로그 안 남는다. 그럴 때 QA가 한다. 로그 뽑기. 게임 켜고 버그 터질 때까지 플레이한다. 10번, 20번, 100번. 터지면 그 순간의 로그를 저장한다. 개발자한테 준다. "로그 첨부했어요." 이게 QA의 일이다. 그래서 입에 붙었다. "로그 확인해볼게요." 지하철 카드가 안 찍혔다. 역무원한테 말한다. "로그 확인해볼게요." 역무원이 당황한다. "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냉장고가 이상하다. A/S 기사한테 전화한다. "로그 확인해주실 수 있어요?" 기사님이 묻는다. "로그가 뭔데요?" 설명하다가 포기한다. 확률 이상한데 밸런스 QA의 입버릇이다. "확률 이상한데." 가챠 시스템 테스트한다. 레어 등급 확률 5%래. 100번 돌린다. 2번 나왔다. "확률 이상한데." 기획자한테 말한다. 기획자가 답한다. "그럴 수 있죠." 아니다. 통계적으로 이상하다. 5%면 100번에 5번 나와야 한다. 오차범위 ±2 정도. 2번은 너무 낮다. 다시 돌린다. 1000번. 38번 나왔다. 3.8%. "확률 이상한데요." 버그 리포트 쓴다. 기획자가 확인한다. 코드 잘못됐다. 확률 계산식에 오류. 고쳐진다. 이게 QA가 하는 일이다. 숫자를 본다. 확률을 검증한다. 플레이어가 느끼기 전에 찾는다. 엑셀 돌린다. 평균, 표준편차, 신뢰구간. 대학교 통계학 시간에 배운 거 여기서 쓴다. 그래서 숫자에 민감해진다. 편의점 1+1 행사. 두 개 집어든다. 하나만 계산된다. "확률 이상한데." 아니 이건 확률이 아니라 시스템 버그다. 친구가 "요즘 복권 잘 안 나오더라"고 한다. 나는 답한다. "샘플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데?" 친구가 이상하게 쳐다본다.재현 안 돼요 개발자한테 제일 듣기 싫은 말이다. "재현 안 돼요." 버그 리포트 올렸다. 심각도 높음. 게임 강제 종료되는 버그. 개발자가 답한다. "재현 안 돼요." 황당하다. 나는 10번 해서 10번 터졌는데. 다시 해본다. 또 터진다. 영상 찍는다. 버그 터지는 과정 전부. 5분짜리 영상. 개발자한테 보낸다. "이렇게 하면 재현돼요." 개발자가 답한다. "아 이렇게 하는 거였어요. 고쳤어요." 이게 QA와 개발자의 소통이다. 재현. 버그를 다시 발생시키는 것. 재현이 안 되면 버그를 못 고친다. 그래서 QA는 재현 방법을 자세히 적는다.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몇 번째에.마을로 이동 NPC와 대화 퀘스트 수락 던전 입장 3번째 방에서 스킬 사용 크래시이렇게 적는다. 개발자가 따라 할 수 있게. 근데 가끔 정말 재현 안 되는 버그가 있다. 나도 한 번밖에 못 봤다. 로그도 없다. 그럴 땐 포기한다. 또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일상에서도 쓴다. 친구가 "어제 PC방에서 게임 안 켜졌어"라고 한다. 나는 묻는다. "재현돼?" 친구가 답한다. "몰라 한 번만 그랬어." 나는 말한다. "그럼 버그 아니야. 재현 안 되면 버그 아냐." 친구가 어이없어한다. 이거 알려진 이슈예요 유저 게시판 보면 맨날 쓴다. "이거 알려진 이슈예요." 런칭하고 나면 유저들이 버그 제보한다. 게시판에 올라온다. QA가 확인한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다. CBT 때 나온 버그. 고치는 중이거나 패치 예정. 댓글 단다. "알려진 이슈입니다. 다음 패치 때 수정될 예정입니다." 유저가 답한다. "그럼 왜 런칭했어요?" 할 말이 없다. 알려진 이슈. Known Issue. QA가 이미 찾아서 리포트 올린 버그. 근데 안 고치고 런칭한다. 왜? 시간이 없어서. 우선순위가 낮아서. 게임 터지는 버그는 고친다. 밸런스 버그는 나중에 고친다. UI 버그는 더 나중에 고친다. 런칭은 정해진 날짜에 해야 한다. 못 고친 버그는 알려진 이슈로 남는다. QA는 안다. 어떤 버그가 남아있는지. 유저가 제보하면 '아 그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동으로 나온다. "알려진 이슈예요." 친구가 "이 식당 화장실 물이 안 나오더라"고 한다. 나는 답한다. "알려진 이슈." 친구가 웃는다. "뭔 소리야." 지하철 환승이 불편하다. 친구한테 말한다. "알려진 이슈지 뭐." 친구가 묻는다. "너 무슨 말 하는 거야?" 설명하기 귀찮다. 크리티컬이에요 심각한 버그 발견하면 쓴다. "크리티컬이에요." 던전 들어가면 게임이 꺼진다. 100% 재현된다. 모든 유저한테 터진다. 크리티컬. Critical. 게임 진행 불가능한 수준의 심각한 버그. 바로 보고한다. 팀장한테. 개발팀장한테. 대표한테. 긴급 회의 소집된다. 출시 연기할지 말지 결정한다. 크리티컬은 무조건 고쳐야 한다. 이거 냅두고 런칭하면 게임 망한다. 밤샌다. 개발자랑 같이. 버그 고칠 때까지. 새벽 4시에 고쳐진다. 테스트한다. 재현 안 된다. 통과. 런칭한다. 크리티컬 아닌 버그는 메이저(Major), 마이너(Minor), 트리비얼(Trivial)로 나뉜다. 메이저는 중요한 버그. 고쳐야 하는데 게임 진행은 가능. 마이너는 작은 버그. 불편하지만 참을 만함. 트리비얼은 사소한 버그. UI 텍스트 오타 같은 거. QA는 매일 이걸 분류한다. 이 버그는 크리티컬인가, 메이저인가. 판단 기준이 생긴다. 3년 하면 버그 보자마자 안다. 일상에서도 나온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다. 친구한테 말한다. "크리티컬이네." 친구가 묻는다. "그게 뭔데?" 설명한다. "게임 진행 불가능한 수준." 친구가 웃는다. "여기 게임 아닌데." 카페에서 와이파이가 안 된다. 혼잣말한다. "메이저 정도?" 옆 사람이 쳐다본다. 빌드 받아야죠 하루의 시작이다. "빌드 받아야죠." 출근한다. 컴퓨터 켠다. 제일 먼저 하는 일. 빌드 받기. 빌드. Build. 개발팀이 만든 게임 실행 파일. 매일 업데이트된다. 버그 고친 거, 기능 추가한 거. QA는 최신 빌드로 테스트한다. 어제 빌드는 소용없다. 오늘 빌드로 해야 한다. 다운로드한다. 3GB. 10분 걸린다. 설치한다. 기존 빌드 지우고 새 빌드 설치. 실행한다. 로그인한다. 테스트 계정으로. 시작한다. 오늘의 테스트. 빌드 받는 게 일상이 됐다. 출근하면 자동으로 한다. 생각 안 하고. 집에서도 나온다. 게임 업데이트 알림 뜬다. 혼잣말한다. "빌드 받아야지." 친구가 "뭐래"라고 한다. "아니 업데이트." 친구가 웃는다. "너 회사 너무 다닌다." 맞다. 회사를 너무 다닌다. 패치노트 확인했어요? 기획자가 QA한테 자주 묻는다. "패치노트 확인했어요?" 확인 안 했다. 까먹었다. "지금 볼게요." 패치노트. Patch Note. 이번 빌드에서 뭐가 바뀌었는지 적은 문서.던전 A 밸런스 조정 NPC B 대사 수정 스킬 C 버그 수정 UI D 변경이렇게 적혀있다. QA는 이걸 보고 테스트한다. 바뀐 부분 위주로. 던전 A 들어가서 밸런스 확인. 스킬 C 써보면서 버그 재현 안 되는지 확인. 근데 패치노트를 안 보고 테스트하면 문제가 생긴다. "이거 버그 아니에요?" "아뇨, 어제 패치했어요. 패치노트에 있어요." "아..." 민망하다. 그래서 매일 아침 확인한다. 패치노트. 빌드 받고 제일 먼저. 습관이 됐다. 앱 업데이트하면 업데이트 내역 본다. 다른 사람은 안 보는데 나는 본다. 친구가 "누가 그거 읽어"라고 한다. 나는 답한다. "나." 친구가 한숨 쉰다. 치트 써야겠다 테스트 시간 단축의 핵심이다. "치트 써야겠다." 레벨 100 콘텐츠 테스트해야 한다. 지금 레벨 1이다. 정상적으로 레벨업하면 50시간 걸린다. 시간 없다. 치트 쓴다. /levelup 100 레벨 100 됐다. 치트. Cheat. 게임 내부 명령어. 개발자 전용. QA도 쓴다. 레벨업, 아이템 지급, 스탯 변경, 시간 조작. 다 된다. QA는 치트로 극한 상황을 만든다. 레벨 1이 레벨 100 몬스터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공격력 0인 상태에서 보스 때리면 어떻게 되는지. 정상적으로 플레이하면 절대 안 나오는 상황. 치트로 만들어서 테스트한다. 버그가 나온다. 고쳐진다. 치트 쓰는 재미가 있다. 신처럼 플레이하는 기분. 근데 치트에 익숙해지면 문제가 생긴다. 집에서 게임한다. 정식 출시된 게임. 치트 없다. 레벨업이 느리다. 답답하다. "치트 없나..." 친구가 웃는다. "너 맛갔다." 맞다. 맛갔다. 스모크 테스트 할게요 빌드 받으면 제일 먼저 한다. "스모크 테스트 할게요." 새 빌드 설치했다. 실행한다. 로그인. 캐릭터 선택. 마을 이동. 던전 입장. 몬스터 처치. 퀘스트 완료. 5분 컷. 이게 스모크 테스트다. Smoke Test. 기본 기능이 돌아가는지 빠르게 확인. 게임이 켜지나? 로그인되나? 캐릭터 움직이나? 전투되나? 이것만 확인한다. 세부 사항은 나중에. 스모크 테스트 통과하면 본격 테스트 시작한다. 스모크 테스트 실패하면 개발팀한테 돌려보낸다. "빌드 안 돌아가요." 개발자가 고친다. 다시 빌드 준다. 다시 스모크 테스트. 통과할 때까지 반복. 스모크 테스트는 QA의 기본이다. 처음 배우는 것 중 하나. 일상에서도 쓴다. 새 전자제품 샀다. 포장 뜯는다. 전원 켠다. 작동 확인. "스모크 테스트 통과." 혼잣말이다. 친구가 이상하게 쳐다본다. 식당 간다. 메뉴 시킨다. 맛본다. "스모크 테스트 통과." 친구가 묻는다. "너 오늘 이상해." 매일 이상하다.일 하다 보니 입에 붙었다. 못 고친다. 이게 내 언어가 됐다. "재현율이요?" 물어보는 게 자연스럽다. QA 3년 하면 이렇게 된다. 업계 용어가 일상 용어 된다. 친구들은 이상하게 쳐다본다. 나는 이게 정상이다. 로그 확인해봐야 아는데.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오전 10시, 회의실 "CBT 일정 확정됐습니다. 2주 후요." 기획팀장이 말했다. QA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2주. 14일. 336시간.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다. "신규 콘텐츠 던전 5개, 레이드 1개, 밸런스 조정 전부 들어갑니다." 옆에 앉은 선배가 한숨 쉬었다. 나도 한숨 나왔다. CBT는 크로즈드 베타 테스트. 유저들한테 공개하기 전 마지막 점검이다. 여기서 버그 터지면? QA 탓이다. "일정표 돌립니다. 각자 담당 콘텐츠 확인하세요." 내 담당은 '심연의 던전' 5개. 같은 던전을 100번은 돌아야 한다. 아니, 100번으로 끝날까?오후 2시, 테스트 시작 빌드 받았다. 설치했다. 게임 켰다. '심연의 던전 1층' 입장. 첫 플레이는 그냥 해본다. 유저처럼. 몬스터 나온다. 스킬 쓴다. 죽인다. 10분 만에 클리어. "어? 생각보다 쉬운데?" 그게 함정이다. 두 번째 플레이. 이번엔 일부러 이상하게 해본다.벽에 붙어서 스킬 쓰기 몬스터 리젠 타이밍에 입장하기 스킬 쿨타임 돌아오기 전에 연타하기5번째 시도. 벽 모서리에서 스킬 쓰니까 캐릭터가 벽 안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스크린샷 찍고, 로그 확인하고,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47]제목: 심연 던전 1층, 북서쪽 모서리 지형 충돌 오류 재현율: 100% 심각도: B (진행 가능하지만 악용 가능) 재현 방법: 좌표 (127, 543)에서 돌진 스킬 사용이게 하나. 99개 남았다.오후 6시, 반복의 시작 같은 던전 20번째. 이제 몬스터 패턴 외웠다.첫 번째 몹: 3초 후 돌진 두 번째 몹: 체력 50% 이하에서 광폭화 보스: 30초마다 광역기외우면 뭐하나. 버그 찾아야지. 이번엔 극한 상황 테스트. 치트로 캐릭터 레벨 1로 낮췄다. 장비 다 벗었다. 던전 입장. 몹한테 한 대 맞으니까 죽었다. 부활. 또 죽었다. 10번 연속 죽었다. "이거 페널티 있나?" 확인해봤다. 없다.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51]제목: 심연 던전 연속 사망 시 페널티 미적용 심각도: C (기획 의도 확인 필요)30번째 플레이. 이번엔 파티 플레이 테스트. 혼자서 캐릭터 4개 돌린다. 멀티 클라이언트 띄우고, 각각 조작. 보스 잡는데 한 캐릭터가 갑자기 튕겼다. "뭐야?" 로그 확인. 메모리 초과 에러. 파티원이 4명일 때 스킬 이펙트가 겹치면 터진다. 이거 큰 버그다. [버그 ID: #2856]제목: 파티 4인 플레이 시 스킬 이펙트 중첩으로 클라이언트 크래시 재현율: 80% 심각도: A (치명적)팀장한테 슬랙 보냈다. "심각도 A 나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답장 왔다. "개발팀한테 전달했어요. 내일 아침 픽스 들어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테스트해야 한다.오후 10시, 야근 시작 퇴근 시간 지났다. 아무도 안 간다. 다들 자기 담당 콘텐츠 테스트 중. 나는 50번째 플레이. 이제 던전 구조 눈 감고 그린다. 입구에서 3시 방향으로 20미터. 거기 상자 있다. 상자 100번 열어봤다. 아이템 드롭률 체크. 엑셀에 정리한다.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50회 32 14 3 1확률이 이상하다. 기획서에는 희귀 등급 10%라고 했다. 근데 6%밖에 안 나온다. 100번 더 돌아야 한다. 통계적 유의미성 확보하려면. 팀장한테 또 슬랙. "상자 드롭률 기획서랑 안 맞는데요?" "몇 번 돌아봤어요?" "50번요." "100번 돌아보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알았다. 100번 더 돈다. 새벽 2시, 밤샘의 중반 편의점 갔다 왔다. 삼각김밥 2개, 레드불 2캔. 사무실 돌아왔다. 불 켜진 자리가 7개. QA팀 전부 남았다.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너 몇 번째야?" "70번이요." "나 120번." "와... 뭐 하시는 거예요?" "레이드 보스 패턴. 확률형 패턴이 3개 있거든. 각 패턴 30번씩 봐야 돼." 저 사람은 더 힘들다. 나는 그나마 낫다. 80번째 플레이. 눈이 침침하다. 모니터가 두 개로 보인다. 레드불 한 캔 더 땄다. 카페인이 혈관을 탄다. 정신이 든다. 다시 던전 입장. 이번엔 속도 테스트. 최대한 빨리 클리어해본다. 스킬 쿨타임 계산하고, 동선 최적화하고. 7분 32초. 두 번째 시도. 6분 58초. "오, 7분 컷 가능하네?" 세 번째 시도. 6분 12초. 근데 이게 문제다. 빨리 깨면 보상이 더 좋아진다. 기획 의도가 뭐지? 속도에 따른 보상 차등이 있나? 기획서 다시 봤다. 없다. 근데 실제로는 보상이 달라진다. 또 버그인가, 숨겨진 기획인가. 기획자한테 슬랙. "심연 던전 클리어 시간에 따라 보상 차등 있나요?" 30분 후 답장. "없는데요? 왜요?" "6분대 클리어하면 보상 더 좋게 나오는데요." "...로그 보내주세요." 로그 캡처해서 보냈다. 1시간 후 답장. "버그 맞습니다. 시간 체크 로직 오류네요. 내일 픽스 들어갑니다." 또 내일이다. [버그 ID: #2889]제목: 던전 클리어 타임에 따른 비정상 보상 지급 재현율: 100% 심각도: A새벽 5시, 한계 90번째 플레이. 손가락이 아프다. 마우스 누르는 것도 힘들다.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조작하는 건지, 게임이 날 조작하는 건지. 선배가 커피 한 잔 줬다. "고생한다." "형도요." "CBT 때는 원래 이래. 익숙해져." "3년 차인데 안 익숙해요." "나도 5년 차인데 안 익숙해." 웃었다. 웃으면서 운다. 커피 마셨다. 쓰다. 설탕 안 넣었다. 그냥 마셨다. 95번째 플레이. 이제 버그가 안 보인다. 아니다. 내 눈이 버그다. 모든 게 정상으로 보인다. 위험한 신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 갔다. 바람 쐬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서울 하늘이 밝아온다. 5시 30분. 출근하는 사람들 보인다. 나는 아직 퇴근 못 했다. 10분 쉬었다. 다시 들어갔다. 오전 7시, 100번째 드디어. 100번째 플레이. 시작 버튼 눌렀다. 던전 입장. 익숙한 BGM. 익숙한 몬스터. 익숙한 패턴. 9분 만에 클리어. 첫 플레이보다 1분 느리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했다. 엑셀 정리. 상자 드롭률 최종 집계.총 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100회 64 28 7 1희귀 7%. 기획서는 10%. 확실히 다르다. 보고서 작성. 팀장한테 메일. 제목: [심연 던전 1층] 100회 테스트 완료 - 드롭률 이슈 포함 본문:총 플레이 시간: 14시간 발견 버그: 23건 (A등급 3건, B등급 8건, C등급 12건) 드롭률 오차: 희귀 등급 -3%p 재테스트 필요 항목: 파티 플레이 크래시 (픽스 후)보냈다. 시계 봤다. 7시 30분. 출근 시간이다. 나는 아직 회사에 있다. 오전 9시, 출근 사람들 출근한다. 개발팀, 기획팀, 아트팀. 다들 출근한다. QA팀은 아직도 있다. 밤샘한 사람이 7명. 팀장이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10시까지 쉬고 12시에 회의 있어요." 3시간 쉰다. 어디서 쉬지? 집 가기엔 애매하다. 회의실 소파에 누웠다. 눈 감았다. 1초 만에 잠들었다. 낮 12시, 회의 알람에 깼다. 몸이 무겁다. 목이 아프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세면장 갔다. 얼굴 씻었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 장난 아니다. 회의실 들어갔다. 개발팀장, 기획팀장, QA팀장. 그리고 우리. "밤샘 테스트 결과 공유하겠습니다." 팀장이 발표했다.총 발견 버그: 147건 A등급(치명적): 12건 B등급(심각): 43건 C등급(경미): 92건개발팀장 표정이 굳었다. "A등급이 12건이요?" "네." "CBT까지 2주인데..." "알고 있습니다." 기획팀장이 말했다. "드롭률 문제는?" "5개 던전 전부 확률 오차 있습니다. 재조정 필요합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쉰 건지 모르겠다. 다들 쉰 것 같다. 회의 끝났다. 결론:A등급 버그 우선 픽스 드롭률 전면 재조정 QA팀 추가 인력 투입 야근 수당 승인야근 수당은 좋다. 근데 돈보다 잠이 필요하다. 오후 2시, 재시작 픽스된 빌드 받았다. A등급 버그 12건 중 3건 수정됐다. 다시 테스트. 심연 던전 1층. 또 들어간다. 101번째 플레이. 파티 플레이 크래시 확인. 캐릭터 4개 띄우고, 스킬 난사. 안 튕긴다. "오, 고쳐졌네." 10번 더 해봤다. 안정적이다. 만티스에 코멘트. [버그 #2856 - 해결 확인] 102번째 플레이. 이번엔 2층 던전. 새로운 맵. 새로운 몬스터. 새로운 버그. 또 시작이다. 저녁 8시, D-13 하루가 지났다. CBT까지 13일 남았다. 오늘 100번 돌았다. 내일도 100번 돈다. 모레도. 글피도. 2주 동안.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이거 먹어." 비타민이었다. "이거 먹으면 덜 피곤해." "감사합니다." 먹었다. 효과는 모르겠다. 그냥 먹는다. 먹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밤 11시, 혼잣말 130번째 플레이. 혼자 중얼거린다. "이 몹 체력이 12,500이고..." "스킬 쿨타임 5초..." "돌진 패턴은 3초 후..." 말하면 집중이 된다. 말 안 하면 멍해진다. 옆자리 동료도 중얼거린다. "확률이 왜 이래..." "100번 돌았는데..." 우리는 미쳤다. 게임에 미쳤다. 아니다. 버그에 미쳤다. 새벽 1시, 편의점 또 편의점. 이번엔 도시락. 치킨 마요 도시락. 레드불 3캔. 초코바 2개. 계산했다. "야근하세요?" 알바생이 물었다. "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길. 하늘 봤다. 별 없다. 서울은 별이 안 보인다. 불빛이 너무 많아서. 우리 사무실 불빛도. 새벽 1시인데 환하다. 새벽 3시, 150번 150번째 플레이. 이제 감각이 없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뇌는 꺼졌다. 근육이 기억한다. 던전 입장. 스킬 1번. 스킬 2번. 회피. 평타. 스킬 3번. 클리어. 7분 43초. 로그 확인. 이상 없음. 다음. 151번째. 또. 152번째. 또. 새벽 5시, 끝 160번째 플레이 끝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한다. 자리 정리했다. 쓰레기 버렸다. 레드불 캔 7개. 커피 컵 4개. 초코바 껍질 3개. 내 몸이 쓰레기다. 가방 챙겼다. 나갔다. 새벽 공기. 차갑다. 눈 감았다. 그냥 여기서 자고 싶다. 오전 6시, 집 고시원 도착. 문 열었다. 침대 보였다. 쓰러졌다. 알람 맞췄다. 9시 30분. 3시간 30분 잔다. 10시 출근이다. 눈 감았다.CBT까지 13일. 던전은 4개 남았다. 버그는 계속 나온다. 잠은 계속 부족하다. 이게 게임 Q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