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동료들, 우리만의 야근 문화
- 09 Dec, 2025
새벽 3시의 메시지
“버그 찾았다.”
슬랙에 민수 형 메시지가 떴다. 새벽 3시 42분.
나도 찾았다. 같은 버그인지 확인했다. 다른 거였다.
“저도요. 다른 건데.”
“ㅋㅋㅋ 대박”
이게 우리의 대화다. 새벽에 버그를 찾고 웃는다.
CBT 3일째다. 오늘은 네 번째 밤샘이다. 집에 간 게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난다. 사무실 소파에서 자고, 편의점 도시락 먹고, 다시 테스트한다.
피곤하다. 눈이 따갑다. 레드불을 다섯 캔 마셨다.
근데 이상하게 혼자가 아니다.

QA팀은 다섯 명
나 포함 다섯 명이다.
민수 형, 32세. 경력 7년. QA팀 막내였던 애가 이제 팀장이다. 버그 찾는 감이 신급이다. “이거 수상한데?” 하면 90% 터진다.
지원이 누나, 29세. 경력 5년. 밸런스 테스트의 신. 엑셀로 확률 계산하는 속도가 인간이 아니다. “확률 0.3% 차이 나는데요?” 같은 말을 한다.
준호, 27세. 나랑 동기. 같이 입사했다. 3년 전 신입 교육 때 “게임 좋아하세요?”라고 물었다. “당연하죠.” 지금은 둘 다 복잡하다.
수진이, 24세. 막내. 1년 차. 아직 눈이 살아있다. “와 이 게임 재밌어요!”라고 한다. 1년 뒤엔 저 말 안 할 거다.
우리 다섯 명이 전부다.
개발팀은 50명이다. 기획은 15명, 아트는 20명, 프로그래밍은 15명.
QA는 5명이다.
50명이 만든 걸 5명이 테스트한다. 말이 되나?
근데 우리끼리는 잘 맞는다. 이상하게.
야근의 단계
10시 출근이다. 정상 퇴근은 7시다.
실제로 7시에 퇴근하는 날은 일 년에 열흘도 안 된다.
평소는 9시 퇴근이다. 2시간 야근. ‘오늘은 일찍 갔네’ 소리 듣는다.
업데이트 전 일주일은 11시 퇴근이다. 치킨이 나온다. 회사 돈으로.
CBT 일주일 전부터는 집에 안 간다. 사무실에서 잔다. 소파 두 개, 바닥 세 명. 로테이션 돈다.
런칭 전 3일은 잠을 안 잔다. 레드불과 커피로 버틴다. 민수 형이 “이건 전쟁이다”라고 했다. 맞다.
근데 이 야근을, 혼자 하면 못 한다.
같이 하니까 한다.

새벽의 루틴
새벽 2시쯤 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민수 형이 일어난다. “커피 타러 간다. 누구?”
다 손 든다.
다섯 명이 우르르 탕비실로 간다. 믹스커피 다섯 개를 탄다. 설탕 두 스푼씩 더 넣는다. 각성용이다.
탕비실에서 10분 정도 떠든다.
“오늘 몇 개 찾았어?” “17개요.” “나 23개.” “나 8개… 적네.” “크리티컬은?” “3개.”
버그 개수를 자랑한다. 이상하다. 버그를 찾아서 뿌듯하다. 더 이상하다.
커피 들고 돌아온다. 다시 테스트한다.
새벽 4시쯤 되면 또 집중력이 떨어진다.
누가 “라면 먹을까요?” 한다. 다 찬성한다.
편의점 간다. 사무실 건물 1층. 라면 다섯 개, 김밥 세 줄, 삼각김밥 몇 개.
탕비실에서 라면 끓인다. 다 같이 먹는다.
“이 던전 밸런스 이상한 거 같은데.” “맞아, 보스 너무 쎔.” “로그 보니까 클리어율 12%.” “기획 의도래. 하드코어 유저용.” “하드코어 아니라 고어코어잖아.”
게임 얘기하면서 먹는다. 일인지 대화인지 모르겠다.
근데 이 시간이 좋다. 솔직히.
버그의 희열
버그에도 등급이 있다.
Minor. 별로 안 중요함. 텍스트 오타, UI 살짝 어긋남. 나중에 고쳐도 됨.
Normal. 보통. 기능 작동은 하는데 뭔가 이상함. 고쳐야 하는데 급하진 않음.
Major. 중요함. 기능이 제대로 안 됨. 빨리 고쳐야 함.
Critical. 크리티컬. 게임 터짐. 서버 다운. 런칭 못 함. 당장 고쳐야 함.
크리티컬 버그를 찾으면 희열이다.
“크리티컬 찾았다!”
다 모인다. 내 모니터 앞으로.
“어떻게 재현해?” “이렇게, 이렇게, 그리고 이렇게.”
화면이 터진다. 검은 화면. 강제 종료.
“대박.” “이거 런칭 전에 못 찾았으면…” “ㄷㄷㄷ”
다 같이 떤다. 그리고 웃는다.
이상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버그를 찾아서 좋아한다. 게임이 터져서 기뻐한다.
근데 이게 우리 일이다.

개발자들과의 관계
개발팀이랑은 미묘하다.
버그 리포트 올리면, 개발자가 확인한다.
“재현 안 되는데요?” “저는 됐는데…” “다시 해봐요.”
다시 한다. 또 터진다. 영상 찍어서 보낸다.
“아 이거 스펙이에요.” ”…?” “기획 의도예요.”
화난다. 근데 참는다.
가끔은 개발자가 고맙다고 한다.
“이거 못 찾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런칭 후에 터졌으면…”
그럴 때 보람이다. 조금.
근데 대부분은 “또 버그예요?” 소리 듣는다.
우리도 알다. 개발자들도 야근한다. 힘들다.
근데 우리도 힘들다.
버그 찾는 게 우리 일이다. 미안하지만.
우리만의 농담
팀 안에서만 통하는 농담이 있다.
“이번 생은 망했다.” 게임 캐릭터가 사망했을 때 하는 말. 우리 인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확률이 거짓말을 하네.” 뽑기 확률이 이상할 때. 인생도 확률이 안 맞는다는 뜻.
“로그를 보자.” 문제가 생겼을 때. 인생도 로그가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
“재현율 100%.” 버그가 항상 터질 때. 우리 인생의 불행도 재현율 100%라는 뜻.
“이거 핫픽스 대상.” 심각한 문제. 우리 인생도 핫픽스가 필요하다.
민수 형이 “우리 팀 슬랙 대화 보면 정신병원 같을 거다”라고 했다.
맞다.
근데 재밌다.
런칭 성공의 순간
CBT가 끝났다. 런칭일이다.
서버 오픈. 오후 2시.
우리 다섯 명 다 출근했다. 오전 9시부터.
긴장된다. 버그 터지면 우리 책임이다.
2시가 됐다. 서버 켜졌다.
유저들이 접속한다. 동시 접속자 1만 명, 2만 명, 3만 명.
슬랙에 메시지가 쏟아진다.
“렉 심하다는 제보 있어요.” “서버 터질 거 같은데요?”
긴장이 최고조다.
민수 형이 모니터를 계속 본다. 지원이 누나가 로그를 분석한다.
3만 5천 명. 서버가 버틴다.
“괜찮은데?” “버그 제보 없어요.”
4만 명. 5만 명.
“안정적인데?”
민수 형이 웃는다. “해냈다.”
오후 6시. 런칭 4시간. 크리티컬 버그 제보 없음.
민수 형이 일어났다. “회식 간다. 다 나온다. 지금.”
회사 카드로 고기집 갔다. 삼겹살 10인분 시켰다.
소주 마셨다. 다 같이.
“수고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다음 업데이트는 언제죠?” “ㅋㅋㅋ 일주일 뒤.” “미친.”
웃었다. 다 같이.
이 순간만큼은 좋았다.
퇴사를 고민할 때
준호가 말했다. 이번 달 초.
“나 이직 알아보는 중이야.”
놀라지 않았다. 나도 생각 중이니까.
“어디?” “그냥… QA 말고 다른 거.” “뭐?” “모르겠어. 근데 이건 아닌 거 같아.”
맞다. 이건 아니다.
3년 했다. 연봉은 500만 원 올랐다. 3400만 원.
개발자들은 5000만 원 넘는다. 같은 연차인데.
야근은 더 많아졌다. 건강검진에서 간 수치 나빠졌다고 했다.
게임은 더 이상 재미없다. 일이 됐다.
근데 퇴사는 못 하겠다.
이 팀을 떠나는 게 싫다.
민수 형, 지원이 누나, 준호, 수진이.
같이 밤샘하고, 라면 먹고, 버그 찾고, 웃던 사람들.
이게 유일한 위로였다.
“나도 고민 중이야.” “진짜?” “응.” “근데 못 나가겠다.” “나도.”
둘이 웃었다. 쓸쓸하게.
오늘도 야근
오늘은 화요일이다.
신규 업데이트 일주일 전이다.
테스트할 콘텐츠가 산더미다. 신규 던전 3개, 신규 캐릭터 2개, 밸런스 패치.
오전 10시 출근했다. 빌드 받았다. 설치했다. 테스트 시작했다.
점심 먹었다. 구내식당 김치찌개. 맛없다. 먹었다.
오후 테스트 계속했다. 버그 8개 찾았다. 리포트 올렸다.
저녁 7시. 퇴근 시간.
민수 형이 말했다. “오늘 야근 어때?”
다 남았다.
치킨 시켰다. 회사 돈으로. 후라이드 두 마리, 양념 한 마리.
치킨 먹으면서 테스트했다.
“이 던전 밸런스 이상한데.” “로그 보자.” “클리어율 너무 낮아.”
밤 11시. 테스트 끝났다.
“내일 봐요.” “수고했어.” “조심히 가.”
고시원 돌아왔다. 씻었다. 누웠다.
피곤하다.
근데 내일 또 간다.
민수 형이 있고, 지원이 누나가 있고, 준호가 있고, 수진이가 있다.
혼자면 못 한다.
같이니까 한다.
이게 우리의 야근 문화다.
이상한 위로다.
근데 이게 전부다. 지금은.
새벽 3시. 슬랙 알림. “버그 찾았다.” 우리만 아는 희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