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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여전히 돌아가는 게임 윈도우

새벽 4시, 여전히 돌아가는 게임 윈도우

런칭 D-3 새벽 4시다. 게임 윈도우가 여전히 돌아간다. 나도 여전히 앉아있다. 사무실엔 나만 남았다. 개발팀은 11시에 갔다. 기획팀은 1시에 갔다. QA팀 막내인 나만 남았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만 더 돌려봐." 팀장의 말이었다. 던전 입장 버튼을 누른다. 153번째다. 로딩 화면이 뜬다. 3초. 몬스터가 나온다. 공격한다. 죽인다. 보상 창이 뜬다. 확인한다. 엑셀에 기록한다.던전 154회차 입장. 같은 루트. 같은 몬스터. 같은 패턴.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다. 확률이 이상하다 레드북스 드랍률 0.5%라고 했다. 300회 돌리면 1~2개 나와야 한다는 계산이다. 근데 153회 돌렸는데 0개다. 엑셀을 다시 본다. 블루북스는 47개 나왔다. 드랍률 3%니까 맞다. 그린북스는 6개. 드랍률 0.3%인데 좀 많이 나왔다. 레드북스만 0개다. 로그를 연다. 파일을 찾는다. Ctrl+F로 "RedBook" 검색. 0건. "아." 테이블을 연다. 던전 보상 테이블. 레드북스 항목을 찾는다. 확률: 0.5 가중치: 0 "씨발." 가중치가 0이면 확률이 아무리 높아도 안 나온다. 기획자가 테이블 셋팅할 때 실수한 거다. 새벽 4시 18분. 나는 버그를 찾았다.슬랙을 연다. 기획팀 채널에 메시지를 쓴다. "@김과장님 레드북스 가중치 0으로 되어있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읽음 표시는 안 뜬다. 당연하다. 자고 있을 시간이다. 맨티스를 연다. 버그 리포트를 작성한다. 제목: [크리티컬] 레드북스 드랍 안 됨 재현율: 100% 심각도: Critical 설명: 던전 보상 테이블에서 레드북스 가중치 0으로 설정되어 드랍 불가. 153회 테스트 결과 0건 드랍 확인. 가중치 50으로 수정 필요. 스크린샷 첨부. 로그 파일 첨부. 엑셀 데이터 첨부. 등록. 혼자만 남은 밤 의자에 기댄다. 목이 뻐근하다. 허리가 아프다. 사무실이 조용하다. 에어컨 소리만 들린다. 창밖은 아직 어둡다. 핸드폰을 본다. 카톡이 17개 쌓여있다. 친구: "야 이번 주말에 놀자" 친구: "너 요즘 연락 안 되냐" 친구: "야" 엄마: "밥은 먹고 다니냐" 엄마: "야근 그만 좀 해라" 다 못 본 척한다. 답장할 힘이 없다.레드불을 마신다. 오늘 다섯 번째다. 심장이 두근거린다. 게임 윈도우로 돌아간다. 던전 154회차 시작. 몬스터가 나온다. 공격한다. 죽인다. 이게 내 일이다. 런칭이 다가온다 D-3이다. 3일 후면 오픈이다. 유저들이 들어온다. 이 던전을 돌린다. 레드북스를 기대한다. 만약 내가 오늘 못 찾았으면. 만약 가중치 0인 채로 런칭했으면. 커뮤니티가 난리 났을 거다. "레드북스 안 나옴" "확률 사기임" "환불 ㄱㄱ" 그럼 회의가 소집된다. "QA에서 왜 못 찾았어요?" "테스트 안 한 거예요?" 내 잘못이 된다. 테이블 셋팅은 기획자가 했는데. 못 찾은 건 QA 책임이 된다. 새벽 4시 37분. 나는 회사를 지켰다. 아무도 모른다. 아무도 칭찬 안 한다. 그냥 월요일 되면. "아 레드북스 버그 고마워요~" 슬랙 메시지 하나 올 거다. 언제까지 의자에서 일어난다. 화장실에 간다. 거울을 본다. 눈이 충혈됐다. 다크서클이 내려왔다. 27살 얼굴이 아니다. 물로 세수한다. 차갑다. 사무실로 돌아온다. 자리에 앉는다. 모니터를 본다. 던전 155회차. 언제까지 이럴 건가. 런칭하면 끝일까. 다음 업데이트 준비하면 또 이럴 거다. QA는 이렇게 사는 건가. 연봉은 3400. 개발자는 6000 받는데. 똑같이 야근하는데. 똑같이 런칭 압박 받는데. 나만 절반이다. 게임을 좋아해서 들어왔다. 게임 만드는 일이 멋있어 보였다. 근데 나는 만들지 않는다. 그냥 부순다. 버그를 찾는다. 반복한다. 던전 156회차 입장. 창밖이 밝아온다 새벽 5시 20분. 창밖이 밝아진다. 하늘이 회색이다. 곧 파란색이 될 거다. 출근하는 차들이 보인다. 세상은 돌아간다. 나는 여기 앉아있다. 게임 윈도우 앞에. 던전 200회차를 채웠다. 엑셀을 정리한다. 레포트를 쓴다. "던전 보상 200회 테스트 완료. 레드북스 드랍 0건 확인. 가중치 오류로 판단. 수정 후 재테스트 필요." 저장. 게임을 끈다. 윈도우가 꺼진다. 화면이 검게 변한다. 내 얼굴이 비친다. 모니터에. 피곤하다. 백팩을 챙긴다. 불을 끈다. 사무실을 나간다. 엘리베이터를 탄다. 1층. 밖으로 나온다. 차가운 공기. 6시 반에 집 도착. 씻는다. 눕는다. 10시 출근이다. 3시간 반 잘 수 있다. 눈을 감는다. 던전 입장 버튼이 보인다. 꿈에서도 게임을 한다.런칭까지 3일. 나는 오늘도 회사를 지켰다. 아무도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