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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 '게임회사' 다닌다고 할 때

부모님께 '게임회사' 다닌다고 할 때

명절 전화 추석 전날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명절에 못 내려온다니, 회사는 명절도 안 쉬냐?" "아니... 런칭 전이라서요." "런칭이 뭐냐?" 설명하기 귀찮았다. "게임 나오는 날이요." "아이고. 게임 만드는 게 그렇게 바쁘냐." 만드는 게 아니라 테스트하는 건데. 이것도 설명 안 했다. "일 많아요." "그래도 명절인데..." 미안하다고 했다. 진짜 미안했다. 끊고 나니 속이 쓰렸다.처음 말했을 때 작년 설날이었다. 친척들이 다 모였다. 큰아버지가 물으셨다. "취직했다며? 어디 다니냐?" "게임 회사요." "게임? 게임이 뭐냐?" "컴퓨터 게임... 만드는 회사요."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작은아버지가 거들었다. "요즘 게임이 돈이 된다더라. SKT에서도 하잖아." "SKT는 아니고요... 중견 회사요." "거기서 뭐 하는데?" "QA요. 버그 찾는 거요." "버그? 벌레?" 설명했다. 게임 테스트한다고. 문제 찾는다고. "아, 게임하면서 일하는 거네?"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가 웃으셨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그래도 취직했으니 다행이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따로 불렀다. "게임 회사가 안정적이냐?" "...네." 거짓말이었다. 우리 회사 작년에 20명 정리해고했다. "연봉은?" "괜찮아요." 3400만원. 괜찮다고 할 수 없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아버지는 아무 말 안 하셨다.어머니의 걱정 어머니는 매주 전화하신다. "밥은 먹냐?" "먹어요." "회사에서 야근 많이 시킨다며?" "가끔요." 어제도 밤 12시까지 했는데. 말 안 했다. "게임 회사는 불안하지 않냐?" "괜찮아요." "친구 어머니 말로는, 게임 회사는 젊을 때만 다니는 덴데..." "그런 거 아니에요." 사실이긴 했다. 우리 팀장님도 35살에 이직 준비 중이다. "공무원 시험 다시 볼 생각 없냐?" "...없어요." 어머니는 한숨 쉬셨다. "네가 좋다면 어쩔 수 없지." 전화 끊고 고시원 천장을 봤다. 좋은 건 맞다. 게임 관련 일 하는 거. 근데 이게 내가 원하던 건지는 모르겠다. 친구들 반응 고등학교 동창 단톡방. "겜큐 요즘 뭐하냐?" "일하지." "게임 회사 다니면서 게임 하는 거 아니냐 ㅋㅋ" "그게 일이야." "부럽다 진짜. 돈 받고 게임하네." 설명하기 귀찮았다. 같은 던전 100번 돌면서 확률 검증하는 게 게임이냐고. 런칭 전날 28시간 연속 테스트하는 게 게임이냐고. 말 안 했다. "ㅇㅇ 부럽지." 거짓말이었다. 한 친구가 물었다. "연봉은 얼마냐?" "비밀." "5천은 넘냐?" "..." 답 안 했다. 단톡방이 조용해졌다. 누가 주제를 돌렸다. "다음 주 광주 내려가면 만나자." "나 런칭 전이라 못 가." "또?" "ㅇㅇ." 친구들은 이해 못 한다. 나도 이해 못 한다.연봉 이야기 아버지는 가끔 물으신다. "회사 다닌 지 3년 됐는데, 연봉 올랐냐?" "조금요." 200만원 올랐다. 세전으로. "친구들은 어떠냐?" 친구 중에 은행 다니는 애 있다. 4800만원 받는다. 친구 중에 공무원 된 애 있다. 안정적이다. 친구 중에 대기업 다니는 애 있다. 복지가 좋다. "비슷해요." 거짓말이었다. "그래. 건강하게만 다녀라." 아버지는 더 이상 안 물으신다. 어머니는 명절 때마다 말씀하신다. "게임 회사는 오래 못 다니는 거 아니냐."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결혼은 언제 하냐?" "...나중에요." "나중이 언제냐. 네 나이가 몇인데." 27살이다. 결혼은 생각도 못 했다. 연봉 3400만원으로 어떻게 결혼하냐. 서울에서 전세 구하려면 최소 2억이다. 나는 통장에 800만원 있다. "열심히 모으고 있어요." 어머니는 한숨 쉬셨다. 정상 회사 지난달 광주 내려갔다. 친척 결혼식이었다. 어머니가 소개해주셨다. "우리 아들, 서울에서 게임 회사 다녀." 친척이 물었다. "어디? 넥슨?" "아니요. 작은 회사요." "크래프톤?" "...중견 회사요." "아. 그래도 게임 회사면 요즘 잘 나가잖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네..." "연봉 많이 받겠네?" 어머니가 대신 대답하셨다. "그냥 평범하게 받아." 평범하지도 않다. 적게 받는다. 친척은 관심 없다는 듯 고개 끄덕이고 갔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게임 회사라고 하면 사람들이 좀 이상하게 봐." "...네." "정상 회사 다니는 거 맞지?" 정상 회사가 뭔지 모르겠다. 출근하고, 일하고, 월급 받는다. 근데 왜 이상하게 보는 걸까. "맞아요." 어머니는 안심하신 것 같았다. 나는 안심이 안 됐다. 명절 거짓말 이번 설에는 내려갈 수 있다. CBT가 연말에 끝났다. 어머니한테 전화했다. "설에 내려갈게요." "정말? 회사에서 쉬래?" "네." "다행이다. 작년에는 못 왔잖아." "죄송해요." "아니다. 바쁜데 어쩔 수 없지." 어머니는 기뻐하셨다. "음식 많이 준비해놔야겠다." "엄마, 저 많이 안 먹어요." "네가 좋아하는 거 다 해줄게." 고맙다고 했다. 진짜 고마웠다. 전화 끊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거짓말해야 하나. 연봉 올랐다고. 일 재밌다고. 회사 안정적이라고. 다 거짓말이다. 근데 진실 말하면 부모님만 걱정하신다. "게임 회사 불안하면 이직해라." "공무원 시험 다시 봐라." "은행이라도 알아봐라." 듣기 싫다. 나도 모르겠다. 이게 맞는 길인지. 근데 지금 당장은 이것밖에 없다. 3년 차의 고민 팀 회식 때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QA는 커리어 관리가 중요해." "어떻게요?" "3년 차 넘으면 이직 생각해야지." 나는 지금 3년 차다. "QA만 계속 하면 안 되나요?" "연봉이 안 올라. 개발자 절반밖에 못 받아." 알고 있었다. "다른 직무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더 큰 회사로." "QA 경력으로 다른 직무 가능해요?" "어렵지. 근데 불가능한 건 아니야." 팀장님은 지금 데이터 분석 공부하신다. QA에서 DA로 전환하려고. 나도 뭔가 해야 하나. 근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게임은 좋아한다. 근데 QA는 모르겠다. 좋아하는 건지, 익숙한 건지. 부모님께 말하고 싶은 것 사실 말하고 싶다. 게임 회사 다니는 게 자랑스럽지는 않다고. 연봉도 낮고, 야근도 많고, 미래도 불안하다고. 근데 그래도 게임 관련 일이라서 좋다고. 아침에 출근해서 게임 켜는 게 싫지는 않다고. 새로운 콘텐츠 처음 테스트하는 게 재밌다고. 치명적인 버그 찾았을 때 뿌듯하다고. 게임 런칭하고 유저들 반응 볼 때 보람 있다고. 그런 것들 말하고 싶다. 근데 못 한다. 부모님은 이해 못 하실 거다. "그게 얼마나 가냐."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결혼은 언제 할 거냐."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실 거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한다. 잘 다니고 있다고 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부모님은 안심하신다. 나는 불안하다. 다음 설날 이번 설에는 솔직하게 말해볼까. 연봉 낮다고. 게임 회사 불안하다고. 이직 고민 중이라고. 근데 그래도 지금은 버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아마 또 괜찮다고 할 거다. 부모님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고시원 방에 앉아서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까. 언제쯤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저 게임 회사 다녀요. 자랑스러워요." 그런 날이 올까.부모님께는 오늘도 "괜찮다"고 문자 보냈다. 설에는 좀 솔직해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