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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
- 07 Dec, 2025
게임 덕후 친구들의 부러움, 그 뒤의 진실
게임 덕후 친구들의 부러움, 그 뒤의 진실 "너 진짜 좋겠다" 친구들 만나면 항상 듣는 말이다. "게임하면서 돈 버네 좋겠다." 할 말이 없다. 뭐라고 해야 할지. "응, 좋아" 라고 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아니야 힘들어" 라고 하면 "그래도 게임하잖아" 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냥 웃는다. 애매하게. 어제도 고등학교 동창 만났다. 똑같은 말 들었다. "야 너 RPG 테스트한다며? 와 진짜 부럽다. 나도 게임하면서 돈 벌고 싶다." 얘는 은행원이다. 연봉 4500만원. 나보다 1100만원 많다. 근데 나를 부러워한다. 게임하니까. 설명할 수 없었다. 오늘 내가 뭘 했는지.오늘 한 일 오전 10시 출근했다. 새 빌드 받았다. 신규 던전 추가됐다. "환영의 동굴" 이라는 이름이다. 레벨 45 콘텐츠. 기획서 확인했다. 보스 패턴 3가지, 중간 보스 2마리, 일반 몹 5종류. 테스트 시작했다. 캐릭터 레벨 45로 세팅. 치트 켜고 들어갔다. 첫 플레이: 15분. 보스한테 죽었다. 패턴 파악. 두 번째: 12분. 클리어. 버그 없음. 보상 확인. 세 번째: 보스 스킬 2번에서 캐릭터가 벽 뚫고 나갔다. 버그 발견. 스크린샷 찍고 Mantis에 등록. "환영의 동굴 - 보스 스킬 사용 시 캐릭터 벽 관통 현상" 재현율: 5회 중 2회 심각도: Major 환경: Windows 10, i7-9700, RTX 2070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점심시간이다. 12시 30분. 오후에 또 들어갔다. 일곱 번째부터 스무 번째까지. 같은 던전. 같은 보스. 같은 패턴. 보스 대사를 외운다. "어리석은 인간이여..." 이제 자동으로 손이 움직인다. 회피, 공격, 스킬, 포션. 게임이 아니다. 작업이다. 오후 5시. 던전 30번 돌았다. 버그 7개 찾았다. Major 2개, Minor 5개. 친구가 부러워하는 건 이게 아닐 텐데.게임 덕후의 역설 나는 게임 좋아한다. 진짜로. 중학교 때부터 했다. RPG, FPS, AOS 다 좋아했다. 대학 때 게임 동아리 회장이었다. PC방에서 살았다. "게임 관련 직업 갖고 싶다" 고 생각했다. QA 공고 봤을 때 바로 지원했다. 붙었다. 기뻤다. 첫 달은 좋았다. 진짜 좋았다. 회사에서 게임한다. 돈 받는다. 꿈 같았다. 두 번째 달부터 달라졌다. 같은 스테이지를 100번 돌았다. 밸런스 테스트 때문이다. 드랍률 확인. "에픽 아이템 드랍률 1% 맞는지 확인해주세요." 100번 돌아야 한다. 통계적으로. 50번째쯤 되니까 게임이 아니었다. 노가다였다. 100번 끝나고 엑셀에 정리했다. "드랍률 0.8%, 기획 수치 1%보다 낮음. 확인 필요." 기획자한테 물어봤다. "이거 스펙이에요?" "아 그거 코드 확인해보겠습니다." 다음날 답 왔다. "버그 맞습니다. 수정하겠습니다." 또 100번 돌았다. 수정 확인. 이번엔 1.2% 나왔다. 통과. 200번 돌았다. 같은 스테이지.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베타 때부터 기대했던 게임. 이제 보기 싫다. 역설이다. 좋아하는 게임을 일로 하면 싫어진다. 친구들은 이걸 모른다. "게임하면서 돈 버네" 만 본다. 게임이 게임이 아닐 때를 모른다. 야근은 기본 CBT 일주일 전이다. 팀장이 말했다. "다들 고생 많으실 텐데, 이번 주 야근 부탁드립니다." 부탁이 아니다. 통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밤 11시 퇴근. 토요일 출근. 일요일 출근. CBT 시작하는 금요일, 회사에서 잤다. 간이 침대 깔고. 5명이서. 24시간 모니터링이다. 서버 터지면 바로 대응. 유저들 버그 제보 들어온다. 실시간 확인한다. "상점에서 아이템 구매 시 골드가 안 빠져요." 재현 확인. 로그 확인. 개발팀에 전달. 새벽 3시다. 커피 네 잔째. "던전 입장이 안 돼요." 또 확인. 또 로그. 또 전달. 새벽 5시. 눈이 안 떠진다. 잠깐 잤다. 1시간. 7시에 깼다. 버그 제보 20개 쌓였다. 하나씩 확인한다. 일요일 저녁 9시. 집 갔다. 씻고 쓰러졌다. 월요일 10시 출근. 정상 근무. 야근 수당 나온다. 50만원. 이걸로 이번 달 생활비 채운다. 친구들한테 말했다. "이번 주 야근 진짜 힘들었어." "그래도 게임하잖아." 할 말 없다.연봉 3400만원의 의미 3년 차다. 연봉 3400만원. 신입 때 2800만원이었다. 3년 만에 600만원 올랐다. 개발자 신입은 4500만원부터 시작한다. 3년 차 개발자는 6000만원 넘는다. 같은 회사, 같은 프로젝트, 다른 연봉. QA는 이렇다. 업계 표준이다. "테스트는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팀장이 한 말이다. 연봉 협상 때. 누구나 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게임 좀 해봤으면 할 수 있다. 그래서 싸다. 대체 가능하니까. 근데 3년 했다. 누구나 할 수 없는 것도 안다. 버그 재현하는 감. 심각도 판단하는 눈. 로그 분석 능력. 이게 3년 만에 생긴다. 근데 연봉은 안 올라간다. "QA 연봉 테이블이 그래요." 고시원 월세 40만원. 식비 50만원. 교통비 10만원. 통신비, 보험, 기타 30만원. 한 달 130만원 쓴다. 세후 260만원 받는다. 130만원 남는다. 저축한다. 1년에 1500만원 모은다. 10년 모으면 1억 5000만원. 서울에 집 못 산다. 개발자 친구는 3년 차에 5800만원 받는다. 주식 옵션도 있다. 회사 상장하면 더 받는다. 나는 QA다. 옵션 없다. 이직 생각한다. 근데 어디로? QA 경력으로 개발자 되기 어렵다. 코딩 못한다. 다른 회사 QA? 연봉 비슷하다. 게임 업계 벗어나기? 뭐 할 수 있지? 막막하다. 친구들은 "게임회사 다니네 좋겠다" 한다. 연봉 애기는 안 한다. 민망하니까. 런칭 후 책임은 QA 지난달 게임 런칭했다. 2년 개발한 프로젝트다. 우리 팀이 1년 테스트했다. 런칭 첫날, 서버 터졌다. 동접 10만 명. 예상은 5만 명이었다. 준비 부족. 서버는 인프라팀 책임이다. 우리 문제 아니다. 근데 버그도 터졌다. "결제는 되는데 아이템이 안 들어와요." Critical 버그다. 돈 관련. 긴급 회의 소집됐다. 밤 11시. 대표까지 왔다. "테스트 때 왜 못 찾았어요?" 우리한테 물었다. QA팀한테. 팀장이 설명했다. "결제 테스트는 샌드박스 환경에서 했습니다. 실결제는 런칭 후 처음입니다." "그럼 실결제 테스트는 왜 안 했어요?" "실결제 테스트 환경 구축은 개발팀..." 책임 공방이다. 결국 QA 탓이 됐다. "테스트가 부족했다." 새벽 3시까지 회의했다. 버그 원인 찾았다. 개발팀이 수정했다. 새벽 5시 배포. 우리는 확인 테스트 했다. 새벽 7시 끝. 집 가서 씻고 10시 출근. 런칭 후 1주일, 매일 이랬다. 버그 터지면 QA 탓. 수정하면 개발팀 공. 이게 현실이다. 유저들은 모른다. "QA 뭐 했냐" 댓글 단다. 우리가 1년 동안 찾은 버그 2374개는 모른다. 터진 버그 12개만 본다. 억울하다. 근데 할 말 없다. 우리 일이니까. 버그 못 찾은 게 우리 책임이니까. 게임이 일이 될 때 주말에 게임 안 한다. 요즘.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한다. 안 한다. "너 게임회사 다니면서 게임 안 해?" 웃긴 소리 같지만 진짜다. 평일에 12시간 게임했다. 주말엔 쉬고 싶다. 게임 말고 다른 거. 넷플릭스 본다. 산책한다. 그냥 누워있는다. 게임은 이제 일이다. 취미가 아니다. 새로운 게임 나와도 흥미 없다. "이것도 버그 있겠네" 생각부터 든다. 즐기는 게 아니라 분석한다. 직업병이다. 친구들이랑 게임해도 재미없다. "이 스킬 판정 이상한데" 혼잣말한다. "야 그냥 게임이야. 진지하게 하지 마" 친구가 말한다. 그냥 할 수가 없다. 버그가 보인다. 예전엔 안 보였다. 이젠 보인다. 좋아하던 게임들, 이제 다르게 보인다. "여기 밸런스 이상한데", "이 확률 조작 아니야?", "UI 불편한데". 즐기는 게 아니라 평가한다. 게임이 게임이 아니다. 일이다. 분석 대상이다. 테스트 케이스다. 이게 3년 차 게임 QA의 현실이다. 좋아하는 걸 일로 하면 안 된다는 말, 이제 안다. 좋아하는 게임, 이제 그냥 일이다. 그래도 말 못 한다 친구들 만나면 부러워한다. 설명 안 한다. 이제. "응, 좋아" 하고 넘긴다. 야근 얘기해도 "그래도 게임하잖아" 돌아온다. 연봉 얘기하면 분위기 이상해진다. 버그 얘기하면 재미없어한다. 그냥 웃는다. "꿈의 직장" 이라고 하면 맞장구친다. 속으론 복잡하다. 꿈의 직장 맞나? 모르겠다. 3년 전 나는 여기 오고 싶어했다. 진짜로. 지금은? 이직 고민한다. 근데 어디 가나 비슷할 것 같다. 게임 업계가 다 이렇다. QA는 이렇다. 그래도 버틴다. 야근 수당 필요하니까. 경력 쌓아야 하니까. 다른 길 몰라서 하니까. "게임하면서 돈 버네 좋겠다." 이 말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좋은 건가? 진짜? 잘 모르겠다. 복잡하다. 게임은 좋아한다. 지금도. 근데 일로서의 게임은 다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말로 안 된다. 경험해봐야 안다. 그냥 웃는다. "응, 괜찮아" 하고. 속으론 피곤하다. 오늘도."게임하면서 돈 번다"는 말,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게임은 하는데, 게임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