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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샘이
- 03 Dec, 2025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오전 10시, 회의실 "CBT 일정 확정됐습니다. 2주 후요." 기획팀장이 말했다. QA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2주. 14일. 336시간.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다. "신규 콘텐츠 던전 5개, 레이드 1개, 밸런스 조정 전부 들어갑니다." 옆에 앉은 선배가 한숨 쉬었다. 나도 한숨 나왔다. CBT는 크로즈드 베타 테스트. 유저들한테 공개하기 전 마지막 점검이다. 여기서 버그 터지면? QA 탓이다. "일정표 돌립니다. 각자 담당 콘텐츠 확인하세요." 내 담당은 '심연의 던전' 5개. 같은 던전을 100번은 돌아야 한다. 아니, 100번으로 끝날까?오후 2시, 테스트 시작 빌드 받았다. 설치했다. 게임 켰다. '심연의 던전 1층' 입장. 첫 플레이는 그냥 해본다. 유저처럼. 몬스터 나온다. 스킬 쓴다. 죽인다. 10분 만에 클리어. "어? 생각보다 쉬운데?" 그게 함정이다. 두 번째 플레이. 이번엔 일부러 이상하게 해본다.벽에 붙어서 스킬 쓰기 몬스터 리젠 타이밍에 입장하기 스킬 쿨타임 돌아오기 전에 연타하기5번째 시도. 벽 모서리에서 스킬 쓰니까 캐릭터가 벽 안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스크린샷 찍고, 로그 확인하고,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47]제목: 심연 던전 1층, 북서쪽 모서리 지형 충돌 오류 재현율: 100% 심각도: B (진행 가능하지만 악용 가능) 재현 방법: 좌표 (127, 543)에서 돌진 스킬 사용이게 하나. 99개 남았다.오후 6시, 반복의 시작 같은 던전 20번째. 이제 몬스터 패턴 외웠다.첫 번째 몹: 3초 후 돌진 두 번째 몹: 체력 50% 이하에서 광폭화 보스: 30초마다 광역기외우면 뭐하나. 버그 찾아야지. 이번엔 극한 상황 테스트. 치트로 캐릭터 레벨 1로 낮췄다. 장비 다 벗었다. 던전 입장. 몹한테 한 대 맞으니까 죽었다. 부활. 또 죽었다. 10번 연속 죽었다. "이거 페널티 있나?" 확인해봤다. 없다.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51]제목: 심연 던전 연속 사망 시 페널티 미적용 심각도: C (기획 의도 확인 필요)30번째 플레이. 이번엔 파티 플레이 테스트. 혼자서 캐릭터 4개 돌린다. 멀티 클라이언트 띄우고, 각각 조작. 보스 잡는데 한 캐릭터가 갑자기 튕겼다. "뭐야?" 로그 확인. 메모리 초과 에러. 파티원이 4명일 때 스킬 이펙트가 겹치면 터진다. 이거 큰 버그다. [버그 ID: #2856]제목: 파티 4인 플레이 시 스킬 이펙트 중첩으로 클라이언트 크래시 재현율: 80% 심각도: A (치명적)팀장한테 슬랙 보냈다. "심각도 A 나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답장 왔다. "개발팀한테 전달했어요. 내일 아침 픽스 들어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테스트해야 한다.오후 10시, 야근 시작 퇴근 시간 지났다. 아무도 안 간다. 다들 자기 담당 콘텐츠 테스트 중. 나는 50번째 플레이. 이제 던전 구조 눈 감고 그린다. 입구에서 3시 방향으로 20미터. 거기 상자 있다. 상자 100번 열어봤다. 아이템 드롭률 체크. 엑셀에 정리한다.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50회 32 14 3 1확률이 이상하다. 기획서에는 희귀 등급 10%라고 했다. 근데 6%밖에 안 나온다. 100번 더 돌아야 한다. 통계적 유의미성 확보하려면. 팀장한테 또 슬랙. "상자 드롭률 기획서랑 안 맞는데요?" "몇 번 돌아봤어요?" "50번요." "100번 돌아보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알았다. 100번 더 돈다. 새벽 2시, 밤샘의 중반 편의점 갔다 왔다. 삼각김밥 2개, 레드불 2캔. 사무실 돌아왔다. 불 켜진 자리가 7개. QA팀 전부 남았다.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너 몇 번째야?" "70번이요." "나 120번." "와... 뭐 하시는 거예요?" "레이드 보스 패턴. 확률형 패턴이 3개 있거든. 각 패턴 30번씩 봐야 돼." 저 사람은 더 힘들다. 나는 그나마 낫다. 80번째 플레이. 눈이 침침하다. 모니터가 두 개로 보인다. 레드불 한 캔 더 땄다. 카페인이 혈관을 탄다. 정신이 든다. 다시 던전 입장. 이번엔 속도 테스트. 최대한 빨리 클리어해본다. 스킬 쿨타임 계산하고, 동선 최적화하고. 7분 32초. 두 번째 시도. 6분 58초. "오, 7분 컷 가능하네?" 세 번째 시도. 6분 12초. 근데 이게 문제다. 빨리 깨면 보상이 더 좋아진다. 기획 의도가 뭐지? 속도에 따른 보상 차등이 있나? 기획서 다시 봤다. 없다. 근데 실제로는 보상이 달라진다. 또 버그인가, 숨겨진 기획인가. 기획자한테 슬랙. "심연 던전 클리어 시간에 따라 보상 차등 있나요?" 30분 후 답장. "없는데요? 왜요?" "6분대 클리어하면 보상 더 좋게 나오는데요." "...로그 보내주세요." 로그 캡처해서 보냈다. 1시간 후 답장. "버그 맞습니다. 시간 체크 로직 오류네요. 내일 픽스 들어갑니다." 또 내일이다. [버그 ID: #2889]제목: 던전 클리어 타임에 따른 비정상 보상 지급 재현율: 100% 심각도: A새벽 5시, 한계 90번째 플레이. 손가락이 아프다. 마우스 누르는 것도 힘들다.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조작하는 건지, 게임이 날 조작하는 건지. 선배가 커피 한 잔 줬다. "고생한다." "형도요." "CBT 때는 원래 이래. 익숙해져." "3년 차인데 안 익숙해요." "나도 5년 차인데 안 익숙해." 웃었다. 웃으면서 운다. 커피 마셨다. 쓰다. 설탕 안 넣었다. 그냥 마셨다. 95번째 플레이. 이제 버그가 안 보인다. 아니다. 내 눈이 버그다. 모든 게 정상으로 보인다. 위험한 신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 갔다. 바람 쐬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서울 하늘이 밝아온다. 5시 30분. 출근하는 사람들 보인다. 나는 아직 퇴근 못 했다. 10분 쉬었다. 다시 들어갔다. 오전 7시, 100번째 드디어. 100번째 플레이. 시작 버튼 눌렀다. 던전 입장. 익숙한 BGM. 익숙한 몬스터. 익숙한 패턴. 9분 만에 클리어. 첫 플레이보다 1분 느리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했다. 엑셀 정리. 상자 드롭률 최종 집계.총 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100회 64 28 7 1희귀 7%. 기획서는 10%. 확실히 다르다. 보고서 작성. 팀장한테 메일. 제목: [심연 던전 1층] 100회 테스트 완료 - 드롭률 이슈 포함 본문:총 플레이 시간: 14시간 발견 버그: 23건 (A등급 3건, B등급 8건, C등급 12건) 드롭률 오차: 희귀 등급 -3%p 재테스트 필요 항목: 파티 플레이 크래시 (픽스 후)보냈다. 시계 봤다. 7시 30분. 출근 시간이다. 나는 아직 회사에 있다. 오전 9시, 출근 사람들 출근한다. 개발팀, 기획팀, 아트팀. 다들 출근한다. QA팀은 아직도 있다. 밤샘한 사람이 7명. 팀장이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10시까지 쉬고 12시에 회의 있어요." 3시간 쉰다. 어디서 쉬지? 집 가기엔 애매하다. 회의실 소파에 누웠다. 눈 감았다. 1초 만에 잠들었다. 낮 12시, 회의 알람에 깼다. 몸이 무겁다. 목이 아프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세면장 갔다. 얼굴 씻었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 장난 아니다. 회의실 들어갔다. 개발팀장, 기획팀장, QA팀장. 그리고 우리. "밤샘 테스트 결과 공유하겠습니다." 팀장이 발표했다.총 발견 버그: 147건 A등급(치명적): 12건 B등급(심각): 43건 C등급(경미): 92건개발팀장 표정이 굳었다. "A등급이 12건이요?" "네." "CBT까지 2주인데..." "알고 있습니다." 기획팀장이 말했다. "드롭률 문제는?" "5개 던전 전부 확률 오차 있습니다. 재조정 필요합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쉰 건지 모르겠다. 다들 쉰 것 같다. 회의 끝났다. 결론:A등급 버그 우선 픽스 드롭률 전면 재조정 QA팀 추가 인력 투입 야근 수당 승인야근 수당은 좋다. 근데 돈보다 잠이 필요하다. 오후 2시, 재시작 픽스된 빌드 받았다. A등급 버그 12건 중 3건 수정됐다. 다시 테스트. 심연 던전 1층. 또 들어간다. 101번째 플레이. 파티 플레이 크래시 확인. 캐릭터 4개 띄우고, 스킬 난사. 안 튕긴다. "오, 고쳐졌네." 10번 더 해봤다. 안정적이다. 만티스에 코멘트. [버그 #2856 - 해결 확인] 102번째 플레이. 이번엔 2층 던전. 새로운 맵. 새로운 몬스터. 새로운 버그. 또 시작이다. 저녁 8시, D-13 하루가 지났다. CBT까지 13일 남았다. 오늘 100번 돌았다. 내일도 100번 돈다. 모레도. 글피도. 2주 동안.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이거 먹어." 비타민이었다. "이거 먹으면 덜 피곤해." "감사합니다." 먹었다. 효과는 모르겠다. 그냥 먹는다. 먹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밤 11시, 혼잣말 130번째 플레이. 혼자 중얼거린다. "이 몹 체력이 12,500이고..." "스킬 쿨타임 5초..." "돌진 패턴은 3초 후..." 말하면 집중이 된다. 말 안 하면 멍해진다. 옆자리 동료도 중얼거린다. "확률이 왜 이래..." "100번 돌았는데..." 우리는 미쳤다. 게임에 미쳤다. 아니다. 버그에 미쳤다. 새벽 1시, 편의점 또 편의점. 이번엔 도시락. 치킨 마요 도시락. 레드불 3캔. 초코바 2개. 계산했다. "야근하세요?" 알바생이 물었다. "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길. 하늘 봤다. 별 없다. 서울은 별이 안 보인다. 불빛이 너무 많아서. 우리 사무실 불빛도. 새벽 1시인데 환하다. 새벽 3시, 150번 150번째 플레이. 이제 감각이 없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뇌는 꺼졌다. 근육이 기억한다. 던전 입장. 스킬 1번. 스킬 2번. 회피. 평타. 스킬 3번. 클리어. 7분 43초. 로그 확인. 이상 없음. 다음. 151번째. 또. 152번째. 또. 새벽 5시, 끝 160번째 플레이 끝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한다. 자리 정리했다. 쓰레기 버렸다. 레드불 캔 7개. 커피 컵 4개. 초코바 껍질 3개. 내 몸이 쓰레기다. 가방 챙겼다. 나갔다. 새벽 공기. 차갑다. 눈 감았다. 그냥 여기서 자고 싶다. 오전 6시, 집 고시원 도착. 문 열었다. 침대 보였다. 쓰러졌다. 알람 맞췄다. 9시 30분. 3시간 30분 잔다. 10시 출근이다. 눈 감았다.CBT까지 13일. 던전은 4개 남았다. 버그는 계속 나온다. 잠은 계속 부족하다. 이게 게임 QA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