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게임을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찾는 직업병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찾는 직업병

쉬는 날도 버그가 보인다 주말이다. 친구가 추천한 RPG를 켰다. 캐릭터 생성 화면. 이름 입력창에 특수문자를 넣어봤다. 왜 넣었냐고? 그냥 습관이다. '%#@$' 입력했다. 통과됐다. "이거 나중에 DB 오류 터지겠는데." 혼자 중얼거렸다.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튜토리얼 진행. NPC 대사에 오타가 보였다. "모험가여, 이 마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신걸'이 아니라 '오신 걸'이다. 띄어쓰기 오류.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 폴더명은 '버그모음'. 습관이다.버그 찾는 눈은 못 끈다 친구랑 온라인 게임 했다. "야, 이거 재밌다. 그래픽도 좋고." 나는 UI를 보고 있었다. 스킬 쿨타임 표시가 0.1초 늦게 갱신된다. 미세하게. "어, 이거 타이머 버그 아닌가." "뭐가?" "아니 쿨타임이..." 설명하다가 멈췄다. 친구는 뭐가 문젠지 모른다. 게임 즐기는 거다. 나만 일하고 있다. 던전 클리어했다. 보상 획득 팝업. 텍스트가 박스를 삐져나왔다. "텍스트 오버플로우네." 또 스크린샷. 친구는 다음 던전 가자고 했다. 나는 같은 던전 다시 들어가서 재현율 확인했다. 100%. 버그 맞다. 재밌어야 하는데 일이 됐다. 회사에서 하는 테스트랑 똑같다. 스킬 연계 써봤다. A스킬 → B스킬 → C스킬. C스킬 모션이 씹혔다. 타이밍 문제인가. 다시 해봤다. 또 씹혔다. "이거 콤보 입력 버퍼가..." 친구가 물었다. "너 일하냐?" 맞다. 일하고 있다. 쉬는 날인데.모바일도 예외 없다 지하철에서 모바일 게임 한다. 가챠 돌렸다. SSR 나왔다. 기쁨보다 먼저 든 생각. "이거 확률 표기 맞나?" 공지 확인했다. 2.5%라고 적혀있다. 나는 가챠 100번 돌렸다. SSR 5번 나왔다. 5%. "확률이 이상한데." 표본이 적어서 그런가. 기록을 시작했다. 엑셀 앱 켰다. 가챠 결과 입력. 날짜, 시간, 등급, 누적 횟수. 200번 돌렸다. SSR 9번. 4.5%. 300번. SSR 11번. 3.67%. "점점 2.5%로 수렴하네." 확률은 정상이다. 나는 뭐 하는 거지. 게임 즐기는 게 아니라 통계 내고 있다. 직업병이다. 친구가 카톡 보냈다. "너 그 게임 해봤어?" "응, 재밌어. 근데 확률은 정상이야." "...뭔 소리야?" 설명 안 했다. 점심시간. 회사 휴게실에서 모바일 게임 켰다. 이벤트 던전 입장. 로딩이 길다. 20초. "로딩 최적화 안 했네." 클리어했다. 보상 지급 애니메이션. 3초. "스킵 버튼 없으면 불편한데." 유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다. QA 입장이다. 게임을 못 즐긴다. 평가하게 된다.직업병의 끝 스팀 세일. RPG 하나 샀다. 평가 '매우 긍정적'. 설치하고 실행. 언어 설정 한국어 선택. 튜토리얼 시작. 첫 대사. "용사여, 일어나라." 번역이 어색하다. 일어나라가 아니라 깨어나라가 맞다. 메모했다. 전투 시작. 적 처치. 경험치 획득 표시. "+120 XP" 숫자가 UI 중앙이 아니라 살짝 왼쪽으로 치우쳤다. 정렬 오류. 또 메모. 아이템 습득. 인벤토리 열었다. 아이템 설명에 띄어쓰기가 없다. "체력을50회복한다." '체력을 50 회복한다'가 맞다. 스크린샷. 1시간 플레이했다. 버그 리스트 15개. 게임 스토리? 기억 안 난다. 전투 재미? 모르겠다. 버그만 찾았다. 환불하고 싶었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나다. 결국 환불했다. 사유에 뭐라고 쓸까 고민했다. "게임은 좋은데 제가 즐길 수 없습니다." 진짜 이유다. 직업병 때문에. 2시간 안에 환불했다. 플레이 시간 1시간 16분. 그 시간 동안 버그 20개 찾았다. 보고서는 안 썼다. 돈 안 받으니까. 친구가 물었다. "왜 환불했어? 재밌다던데." "재밌는지 모르겠어. 버그만 보여." "병원 가봐."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끌 수 없는 스위치 회사에서 테스트할 때는 괜찮다. 일이니까. 문제는 집에서다. 유튜브에서 게임 리뷰 본다. 유튜버가 플레이하는 화면. "어? 저기 UI 겹쳤는데." 댓글 달았다. "3:24 UI 버그 있네요." 좋아요 5개. 답글 하나. "ㄹㅇ 저것도 못 잡냐" 나만 보는 게 아니구나. 친구 집. 콘솔 게임 같이 한다. 친구는 스토리 보는 중. 나는 배경 오브젝트를 본다. 나무가 공중에 떠 있다. 배치 오류. "저거 봐. 나무 떴어." "그게 중요해?" 중요하다. 내 눈에는.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봤다. 한 장면에서 캐릭터 손가락이 6개였다. 1초도 안 되는 장면. "작화 오류." 옆에 앉은 사람이 쳐다봤다. 조용히 하라는 눈빛. 미안하다. 습관이다. 회사 동료랑 이야기했다. "나 요즘 게임 못 즐기겠어. 버그만 보여." "나도. 직업병이지 뭐." "끌 수 있는 방법 없나?" "없어. 나도 찾는 중."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게임 QA 3년 차. 게임은 여전히 좋아한다. 근데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쉬는 날에도 일한다. 끌 수 없는 직업병이다.

게임을 좋아했는데, 왜 지겨워졌을까

게임을 좋아했는데, 왜 지겨워졌을까

새벽 2시, RPG 게임을 한다 새벽 2시다. 모니터 앞에 앉아서 RPG 게임을 한다. 던전에 들어간다. 몬스터를 잡는다. 아이템을 먹는다. 재미없다. 아니, 재미있어야 하는데 재미없다. 이 게임, 원래 좋아하던 장르다. 중학교 때부터 RPG 덕후였다. 지금은 그냥 일이다.화면을 본다. '이 스킬 이펙트 짤리는 거 아냐?' '이 몬스터 AI 패턴 이상한데?' '파티 버프 중첩 확인해야지.' 게임을 즐기는 게 아니다. 버그를 찾고 있다. 좋아하던 것이 일이 되면 3년 전, 게임 회사에 입사했다. "게임하면서 돈 벌 수 있어요?" 면접관이 웃었다. "네, 하루 10시간은 해야죠." 처음엔 좋았다. 회사에서 게임 한다. 월급 받는다.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너 꿈의 직장이네." 6개월 지나니까 달라졌다. 같은 던전을 100번 돈다. 확률 검증이라고. 드랍률 0.5% 차이 찾으려고 3일 동안 똑같은 보스만 잡는다. 재미는 50번째에 사라진다.월요일, 신규 콘텐츠 테스트 오늘은 신규 레이드 던전 테스트다. 개발팀이 3개월 걸려 만들었다. 나는 오늘 하루 안에 깨야 한다. 10시에 시작했다. 보스 패턴을 익힌다. 공략법을 찾는다. 12시에 첫 클리어. "재밌는데요?" 옆자리 민수가 말한다. "응, 근데 11페이즈에서 카메라 버그 있어." 재미를 느낄 틈이 없다. 머리는 버그를 찾는다. '이 타이밍에 스킬 쓰면 끊기나?' '파티원 4명일 때 밸런스는?' '극한 딜 넣으면 보스 체력 음수 가능성은?' 저녁 7시, 레이드 5번 클리어했다. 버그 리포트 23건 작성했다. 재밌었나? 모르겠다. 엑셀과 확률 QA의 본업은 버그 찾기다. 그런데 절반은 확률 검증이다. '신규 가챠 SSR 등급 확률 1.5% 맞나요?' 기획자가 물어본다. "확인해볼게요." 앉는다. 엑셀 연다. 매크로 돌린다. 10,000회 뽑기. 결과 정리한다. 그래프 그린다. 1.47%. 오차범위 내. "맞습니다." 4시간 걸렸다.이게 게임인가? 통계학인가? 친구가 말한다. "너 게임 회사 다니잖아. 재밌겠다." 대답 못 한다. 재밌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CBT 때의 기억 작년 6월, CBT(클로즈 베타 테스트) 기간이었다. 2주 동안 회사에서 살았다. 집에 못 간다. 샤워는 회사 샤워실에서. 잠은 회의실 소파에서. 밥은 배달음식. 게임한다. 24시간. 유저들이 신고한 버그 확인한다. 재현한다. 리포트 쓴다. 개발팀 패치한다. 다시 테스트한다. 새벽 4시, 던전에서 떨어져 죽는 버그를 찾았다. 치명적이다. 바로 보고했다. 7시에 패치됐다. 다시 테스트했다. 9시에 확인 완료. 침낭에 들어갔다. 30분 자고 일어났다. 신규 버그 10건 들어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나 게임 좋아했었나?' 퇴근 후 게임을 못 한다 집에 간다. 고시원이다. 책상 위에 개인 PC가 있다. 스팀 라이브러리 87개 게임. 최근 1년, 플레이 시간 0시간. 켜보려고 한다. 마우스 잡는다. 게임 아이콘 본다. 끈다. '이거 하면 또 버그 찾겠지.' 'UI 이상한 거 신경 쓰이겠지.' '밸런스 이상하면 짜증나겠지.' 못 한다. 유튜브 본다. 게임 방송 본다. '저 구간 프레임 드랍 있을 텐데.' '저 스킬 설명 오타네.' 끈다. 넷플릭스 본다.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거. 예능. 다큐. 게임 아닌 거. 동료들의 이야기 팀에 7명 있다. QA 경력 평균 4년. 다들 게임 좋아해서 왔다. 이제는 아무도 게임 안 한다. 점심시간, 민수가 말한다. "너희 요즘 게임 해?" 다들 고개 젓는다. "나 엘든링 샀는데 한 시간 하고 접었어." "왜?" "프레임 체크하고 있더라. 재미없어." 지훈이가 웃는다. "나도. 발더스 게이트 샀는데 퀘스트 버그 찾고 있었어." 다들 웃는다. 웃프다. 게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게임 안 하는 이야기를 한다. 어릴 적 RPG의 기억 초등학교 5학년 때. 첫 RPG 게임을 했다. 제목은 기억 안 난다. 마을-던전-보스 구조. 단순했다. 재밌었다. 방과 후 집에 오면 숙제보다 게임 먼저 켰다. 엄마한테 혼났다. 그래도 했다. 주말엔 12시간 했다. 밤새도록 레벨업했다. 보스 잡으면 소리 질렀다. 친구한테 자랑했다. '나중에 게임 만드는 사람 되고 싶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RPG만 했다. 온라인 RPG, 싱글 RPG, 액션 RPG. 다 좋았다. '게임 회사 가고 싶다.' 대학교 4학년 때. 게임 회사 QA 공고 봤다. '학력 무관, 게임 좋아하면 됨' 바로 지원했다. 합격했다. 꿈을 이뤘다. 지금은 어떤가? 월급날, 통장을 본다 25일이다. 월급날이다. 283만원 들어왔다. 세후다. 야근수당 포함. 계산한다. 한 달 야근 60시간. 시급으로 나누면 얼마지. 계산 멈춘다. 우울해진다. 게임 좋아해서 왔다. 돈은 기대 안 했다.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같은 학교 친구. 프론트엔드 개발자. 연봉 5천만원. 나보다 1600만원 많다. 경력 똑같다. 부럽나? 부럽다. 그런데 개발자 되고 싶나? 모르겠다. 코딩은 못 한다. 배우고 싶지도 않다. 그냥 게임이 좋았을 뿐이다. 좋았을 뿐이다. 과거형이다. 이직을 고민한다 커리어넷 켠다. QA 경력으로 뭘 할 수 있나. 검색한다.다른 게임사 QA: 연봉 비슷함 QA 리드: 경력 7년 필요 게임 기획자: 포트폴리오 필요 CS팀: 연봉 더 낮음갈 곳이 없다. QA 경력은 QA로밖에 안 쳐준다. 개발은 못 한다. 기획은 경험 없다. 3년이 쌓였는데 갈 곳이 없다. 그냥 여기 있는다. 5년 채우면 뭐라도 다르려나. 모르겠다. 이력서 쓴다가 지운다. 쓴다가 지운다. 반복한다. 피곤하다. 런칭 D-7 다음 주 목요일, 신작 런칭이다. 2년 개발한 RPG. 회사 운명 걸렸다. 투자금 50억. 이번 주는 지옥이다. 매일 밤샘. 최종 빌드 테스트. 버그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된다. 출시하고 터지면 QA 책임이다. 월요일부터 회사 산다. 침낭 챙겼다. 샤워 도구 챙겼다. 옷 3벌 챙겼다. 게임 좋아해서 왔는데. 지금 이게 맞나. 팀장이 말한다. "고생하는 거 안다. 런칭 보너스 있으니까 힘내자." 보너스 50만원이다. 세전. 웃긴다. 게임을 켜본다 금요일 밤이다. 일 끝나고 집에 왔다. 11시다. 일찍 온 거다. 씻는다. 편의점 도시락 먹는다. 침대에 눕는다. 핸드폰 본다. 유튜브 본다. 지루하다. 일어난다. PC 앞에 앉는다. 스팀을 켠다. 라이브러리를 본다. RPG 게임 하나 선택한다. 평가 '압도적으로 긍정적'. 친구가 추천했던 거. 설치한다. 30분 걸린다. 기다린다. 설치 완료. 실행한다. 로딩 화면. 메인 메뉴. New Game. 클릭한다. 인트로 영상이 나온다. 3분짜리. 스킵 가능. 스킵 안 한다. 본다. 음악이 좋다. 그래픽이 좋다. 분위기가 좋다. 게임 시작한다. 캐릭터를 움직인다. 마을을 걷는다. NPC와 대화한다. '그래픽 텍스처 로딩 괜찮네.' '대화창 UI 직관적이야.' 'NPC 립싱크 자연스러운데.' 또 시작이다. 분석하고 있다. 그만한다. 끈다. 안 되는구나. 지금의 나 게임을 좋아했다.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해도 안 질렸다. 일이 됐다. 좋아하는 게 일이 됐다. 재미는 사라졌다. 왜 지겨워졌을까. 답은 안다. 같은 걸 100번 반복하면 질린다. 분석하면서 플레이하면 재미없다. 버그 찾는 게 목적이 되면 게임이 아니다. 알지만 바꿀 수 없다. 이게 내 일이다. 3년 했다. 그만두면 뭐 하지. 계속한다. 게임을 한다. 재미는 없다. 익숙하다. 동료가 말했다. "게임 업계 10년 차들 보면 다 그래. 게임 안 해. 못 해." 나도 그렇게 되는구나. 그래도 가끔 생각한다. 다시 재밌어질까. 이직하면? 다른 업종 가면? 1년 쉬면? 모르겠다. 일단 다음 주 런칭 끝내고. 보너스 받고. 생각해보자. 어쩌면 이게 어른이 되는 거다. 좋아하던 걸 잃는 것. 혹은 다른 걸 찾는 것. 아직은 모르겠다. 그냥 월요일이 온다. 출근한다. 게임한다. 재미는 없지만 익숙하다.좋아하는 걸 일로 만들면, 둘 다 잃을 수도 있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