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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그를
- 25 Dec, 2025
게임을 하면서 버그를 찾는 직업병
쉬는 날도 버그가 보인다 주말이다. 친구가 추천한 RPG를 켰다. 캐릭터 생성 화면. 이름 입력창에 특수문자를 넣어봤다. 왜 넣었냐고? 그냥 습관이다. '%#@$' 입력했다. 통과됐다. "이거 나중에 DB 오류 터지겠는데." 혼자 중얼거렸다. 게임은 시작도 안 했다. 튜토리얼 진행. NPC 대사에 오타가 보였다. "모험가여, 이 마을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오신걸'이 아니라 '오신 걸'이다. 띄어쓰기 오류. 스크린샷 찍었다. 저장 폴더명은 '버그모음'. 습관이다.버그 찾는 눈은 못 끈다 친구랑 온라인 게임 했다. "야, 이거 재밌다. 그래픽도 좋고." 나는 UI를 보고 있었다. 스킬 쿨타임 표시가 0.1초 늦게 갱신된다. 미세하게. "어, 이거 타이머 버그 아닌가." "뭐가?" "아니 쿨타임이..." 설명하다가 멈췄다. 친구는 뭐가 문젠지 모른다. 게임 즐기는 거다. 나만 일하고 있다. 던전 클리어했다. 보상 획득 팝업. 텍스트가 박스를 삐져나왔다. "텍스트 오버플로우네." 또 스크린샷. 친구는 다음 던전 가자고 했다. 나는 같은 던전 다시 들어가서 재현율 확인했다. 100%. 버그 맞다. 재밌어야 하는데 일이 됐다. 회사에서 하는 테스트랑 똑같다. 스킬 연계 써봤다. A스킬 → B스킬 → C스킬. C스킬 모션이 씹혔다. 타이밍 문제인가. 다시 해봤다. 또 씹혔다. "이거 콤보 입력 버퍼가..." 친구가 물었다. "너 일하냐?" 맞다. 일하고 있다. 쉬는 날인데.모바일도 예외 없다 지하철에서 모바일 게임 한다. 가챠 돌렸다. SSR 나왔다. 기쁨보다 먼저 든 생각. "이거 확률 표기 맞나?" 공지 확인했다. 2.5%라고 적혀있다. 나는 가챠 100번 돌렸다. SSR 5번 나왔다. 5%. "확률이 이상한데." 표본이 적어서 그런가. 기록을 시작했다. 엑셀 앱 켰다. 가챠 결과 입력. 날짜, 시간, 등급, 누적 횟수. 200번 돌렸다. SSR 9번. 4.5%. 300번. SSR 11번. 3.67%. "점점 2.5%로 수렴하네." 확률은 정상이다. 나는 뭐 하는 거지. 게임 즐기는 게 아니라 통계 내고 있다. 직업병이다. 친구가 카톡 보냈다. "너 그 게임 해봤어?" "응, 재밌어. 근데 확률은 정상이야." "...뭔 소리야?" 설명 안 했다. 점심시간. 회사 휴게실에서 모바일 게임 켰다. 이벤트 던전 입장. 로딩이 길다. 20초. "로딩 최적화 안 했네." 클리어했다. 보상 지급 애니메이션. 3초. "스킵 버튼 없으면 불편한데." 유저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아니다. QA 입장이다. 게임을 못 즐긴다. 평가하게 된다.직업병의 끝 스팀 세일. RPG 하나 샀다. 평가 '매우 긍정적'. 설치하고 실행. 언어 설정 한국어 선택. 튜토리얼 시작. 첫 대사. "용사여, 일어나라." 번역이 어색하다. 일어나라가 아니라 깨어나라가 맞다. 메모했다. 전투 시작. 적 처치. 경험치 획득 표시. "+120 XP" 숫자가 UI 중앙이 아니라 살짝 왼쪽으로 치우쳤다. 정렬 오류. 또 메모. 아이템 습득. 인벤토리 열었다. 아이템 설명에 띄어쓰기가 없다. "체력을50회복한다." '체력을 50 회복한다'가 맞다. 스크린샷. 1시간 플레이했다. 버그 리스트 15개. 게임 스토리? 기억 안 난다. 전투 재미? 모르겠다. 버그만 찾았다. 환불하고 싶었다. 게임이 문제가 아니라 나다. 결국 환불했다. 사유에 뭐라고 쓸까 고민했다. "게임은 좋은데 제가 즐길 수 없습니다." 진짜 이유다. 직업병 때문에. 2시간 안에 환불했다. 플레이 시간 1시간 16분. 그 시간 동안 버그 20개 찾았다. 보고서는 안 썼다. 돈 안 받으니까. 친구가 물었다. "왜 환불했어? 재밌다던데." "재밌는지 모르겠어. 버그만 보여." "병원 가봐."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 끌 수 없는 스위치 회사에서 테스트할 때는 괜찮다. 일이니까. 문제는 집에서다. 유튜브에서 게임 리뷰 본다. 유튜버가 플레이하는 화면. "어? 저기 UI 겹쳤는데." 댓글 달았다. "3:24 UI 버그 있네요." 좋아요 5개. 답글 하나. "ㄹㅇ 저것도 못 잡냐" 나만 보는 게 아니구나. 친구 집. 콘솔 게임 같이 한다. 친구는 스토리 보는 중. 나는 배경 오브젝트를 본다. 나무가 공중에 떠 있다. 배치 오류. "저거 봐. 나무 떴어." "그게 중요해?" 중요하다. 내 눈에는. 영화관에서 애니메이션 봤다. 한 장면에서 캐릭터 손가락이 6개였다. 1초도 안 되는 장면. "작화 오류." 옆에 앉은 사람이 쳐다봤다. 조용히 하라는 눈빛. 미안하다. 습관이다. 회사 동료랑 이야기했다. "나 요즘 게임 못 즐기겠어. 버그만 보여." "나도. 직업병이지 뭐." "끌 수 있는 방법 없나?" "없어. 나도 찾는 중." 우리는 웃었다. 쓴웃음. 게임 QA 3년 차. 게임은 여전히 좋아한다. 근데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쉬는 날에도 일한다. 끌 수 없는 직업병이다.
- 09 Dec, 2025
Mantis에 버그를 등록하는 순간의 쾌감
Mantis에 버그를 등록하는 순간의 쾌감 오전 10시, 새 빌드 출근했다. 오늘 빌드가 떨어졌다. ver.1.2.3.456. 신규 던전 추가 빌드. 설치하면서 커피 한 잔. 오늘도 버그를 찾는다. 팀장이 말했다. "이번 빌드 깔끔할 거야." 개발자들이 항상 하는 말이다. 나는 웃었다. 곧 알게 될 거다.첫 버그, 11시 20분 신규 던전 입장했다. 로딩이 끝나고 화면이 떴다. 보스가 벽에 박혀 있다. 완전히 박혀서 공격도 안 된다. 웃음이 나왔다. 시작부터 대박이네. 스크린샷 찍고, 로그 확인했다. 좌표값이 이상하다. Mantis 켰다. 제목: [던전] 보스 몬스터 스폰 위치 오류 심각도: Major 재현율: 10/10 상세 내용 적는다. "보스가 벽 안쪽 좌표에 스폰됨. 플레이어 접근 불가. 던전 클리어 불가능." 로그 붙이고, 스크린샷 첨부. 등록 버튼 눌렀다. BUG-3421. 오늘 첫 번째다. 기분이 좋다. 이게 내 일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보스 스폰 위치를 치트로 수정했다. 테스트를 계속한다. 보스 잡았다. 보상 드롭됐다. 아이템을 주웠다. 그런데 인벤토리에 안 들어온다. 로그 확인. 아이템 ID가 NULL이다. BUG-3422. Critical. "보스 드롭 아이템 ID 누락. 획득 불가." 바로 이어서 세 번째. 던전 나가려는데 퇴장 버튼이 안 먹힌다. 클릭해도 반응 없음. BUG-3423. Major. "던전 퇴장 버튼 미작동. 플레이어 갇힘." 오후 12시 30분. 3개 등록했다. 모두 Major 이상. 기획자한테 슬랙 날렸다. "이번 빌드 큰일났어요." 답장 왔다. "...확인할게요."점심, 그리고 오후 밥 먹으러 나갔다. 팀 동료 재민이랑 같이. "몇 개 찾았어?" "3개. 너는?" "나는 5개. UI쪽 다 깨졌어." 웃으면서 먹었다. 우리끼리는 버그가 많으면 좋다. 할 일이 생기니까. 오후 2시. 다시 테스트. 네 번째 버그. 스킬 쿨타임이 안 돌아간다. 한 번 쓰면 끝. 재사용 불가. BUG-3424. Major. 다섯 번째. 몬스터 HP가 음수로 간다. -1500 HP에도 안 죽는다. BUG-3425. Critical. 여섯 번째. 파티 초대가 안 된다. "알 수 없는 오류" 메시지만 뜬다. BUG-3426. Normal. 3시 30분. 벌써 6개다. 오늘 대박이네. 심각도 분류의 기술 버그를 찾는 건 쉽다. 게임 하면 나온다. 어려운 건 심각도다. Critical, Major, Normal, Minor, Trivial. 기준이 있다. Critical: 게임 진행 불가. 서버 다운. 결제 오류. Major: 주요 기능 마비. 플레이 심각한 지장. Normal: 불편하지만 우회 가능. Minor: 사소한 오류. 체감 낮음. Trivial: 오타, 툴팁 오류. 이게 애매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UI 텍스트가 겹친다. 개발자는 Minor라고 한다. 하지만 그게 상점 가격이면? 플레이어가 잘못 산다. 환불 요청 들어온다. 이건 Normal이다. 경력이 쌓이면 감이 생긴다. "이건 유저들이 난리 칠 거야." "이건 아무도 모를 거야." 그 감으로 분류한다. 오늘 찾은 6개. Critical 2개, Major 3개, Normal 1개. 개발팀이 싫어할 리스트다.일곱 번째부터 열 번째 오후 4시. 계속 플레이한다. 일곱 번째. BGM이 끊긴다. 특정 구간에서. BUG-3427. Minor. 여덟 번째. 아이템 툴팁 오타. "공격격" → "공격력" BUG-3428. Trivial. 아홉 번째. 업적이 안 달린다. 조건 채워도 반응 없음. BUG-3429. Normal. 열 번째. 이게 좀 애매했다. 확률형 상자를 100번 열었다. 전설 등급이 한 번도 안 나왔다. 확률 표기는 1%다. 100번 중 0번. 이게 버그일까? 확률이니까 원래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느낌이 이상하다. 200번 더 열었다. 총 300번. 전설 0개. 이건 버그다. 로그 뒤졌다. 확률 테이블 확인했다. 전설 등급 가중치가 0으로 박혀 있다. 코드 실수다. BUG-3430. Critical. "확률형 상자 전설 등급 드롭률 0%. 가중치 설정 오류." 이거 런칭 전에 못 잡았으면 큰일날 뻔했다. 매출 직결이다. 오후 5시 30분. 오늘 할당량 끝. 10개 등록 완료. Mantis 창을 보는 시간 리포트 정리한다. 각 버그마다 체크한다.재현 단계 명확한가 로그 첨부했나 스크린샷 있나 심각도 적절한가 담당자 지정했나한 개씩 다시 읽는다. BUG-3421. Major. 보스 스폰. BUG-3422. Critical. 아이템 드롭. BUG-3423. Major. 퇴장 버튼. BUG-3424. Major. 스킬 쿨타임. BUG-3425. Critical. 음수 HP. BUG-3426. Normal. 파티 초대. BUG-3427. Minor. BGM 끊김. BUG-3428. Trivial. 오타. BUG-3429. Normal. 업적. BUG-3430. Critical. 확률 오류. Critical 3개. Major 4개. Normal 2개. Minor 1개. Trivial 1개. 완벽하다. 이 순간이 좋다. 하루 일과의 결과물. 개발자들은 코드를 짠다. 기획자들은 문서를 쓴다. 나는 버그를 찾는다. Mantis에 쌓인 리포트가 내 성과다. 퇴근 전 슬랙 오후 6시. 개발팀장한테서 슬랙 왔다. "오늘 리포트 확인했습니다." "Critical 3개는 내일 아침까지 수정하겠습니다." "Major들은 이번 주 내로요." 답장 보냈다. "확인했습니다. 수정 빌드 나오면 재테스트하겠습니다." 기획자한테서도 왔다. "확률 버그 잡아줘서 감사합니다." "큰일 날 뻔했네요." 이런 말 들으면 기분 좋다. 보통은 "버그가 왜 이렇게 많아요?" 소리 듣는다. 우리가 버그 만드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가끔은 인정받는다. "잘 찾았어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그럴 때 보람 느낀다. 재민이가 물었다. "오늘 몇 개?" "10개. 너는?" "8개." 둘이 웃었다. 오늘 우리 팀 18개다. 팀장이 좋아할 거다. 야근은 없다 오늘은 정시 퇴근이다. CBT 기간 아니면 칼퇴 가능하다. 물론 런칭 전에는 12시간씩 박는다. 하지만 오늘은 괜찮다. 짐 챙겼다. 노트북, 이어폰, 텀블러. Mantis 한 번 더 봤다. BUG-3421부터 3430까지. 오늘 내가 만든 숫자들. 다 의미 있다. 이거 하나하나가 게임을 낫게 만든다. 플레이어들은 모른다. 이 버그들이 있었다는 걸. 우리가 찾아서 없앴으니까. 그게 QA다. 보이지 않는 일. 인정받지 못하는 일.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 퇴근했다. 집에 와서 고시원 들어왔다. 좁다. 3평. 침대, 책상, 옷장. 그게 다다. 씻고 누웠다. 핸드폰 켰다. 회사 게임 커뮤니티 들어갔다. 유저들이 말한다. "이번 업데이트 기대된다." "신규 던전 언제 나와요?" 다음 주 목요일이다. 그때까지 우리가 다듬는다. 댓글 읽으면서 생각했다. 내일도 버그 찾는다. 모레도, 글피도. 런칭까지 매일. 유저들이 편하게 게임하도록. 그게 내 일이다. 연봉은 낮다. 3400만원. 개발자 절반도 안 된다. 야근도 많다. CBT 때는 밤샘이다. 그래도 이 일이 나쁘지 않다. 특히 Mantis에 버그 등록할 때. 오늘처럼 10개 채울 때. 성취감 있다. "내가 이만큼 했구나." 숫자로 보이니까 좋다. BUG-3421, 3422, 3423... 계속 쌓인다. 내 흔적이다. 잠들기 전에 메모했다. "내일 할 일: Critical 3개 재테스트" 눈 감았다. 내일도 버그를 찾는다.오늘 10개. 내일은 더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