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CBT 2주일 전, 밤샘이 시작된다 오전 10시, 회의실 "CBT 일정 확정됐습니다. 2주 후요." 기획팀장이 말했다. QA팀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2주. 14일. 336시간. 우리한테 주어진 시간이다. "신규 콘텐츠 던전 5개, 레이드 1개, 밸런스 조정 전부 들어갑니다." 옆에 앉은 선배가 한숨 쉬었다. 나도 한숨 나왔다. CBT는 크로즈드 베타 테스트. 유저들한테 공개하기 전 마지막 점검이다. 여기서 버그 터지면? QA 탓이다. "일정표 돌립니다. 각자 담당 콘텐츠 확인하세요." 내 담당은 '심연의 던전' 5개. 같은 던전을 100번은 돌아야 한다. 아니, 100번으로 끝날까?오후 2시, 테스트 시작 빌드 받았다. 설치했다. 게임 켰다. '심연의 던전 1층' 입장. 첫 플레이는 그냥 해본다. 유저처럼. 몬스터 나온다. 스킬 쓴다. 죽인다. 10분 만에 클리어. "어? 생각보다 쉬운데?" 그게 함정이다. 두 번째 플레이. 이번엔 일부러 이상하게 해본다.벽에 붙어서 스킬 쓰기 몬스터 리젠 타이밍에 입장하기 스킬 쿨타임 돌아오기 전에 연타하기5번째 시도. 벽 모서리에서 스킬 쓰니까 캐릭터가 벽 안으로 들어갔다. "찾았다." 스크린샷 찍고, 로그 확인하고,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47]제목: 심연 던전 1층, 북서쪽 모서리 지형 충돌 오류 재현율: 100% 심각도: B (진행 가능하지만 악용 가능) 재현 방법: 좌표 (127, 543)에서 돌진 스킬 사용이게 하나. 99개 남았다.오후 6시, 반복의 시작 같은 던전 20번째. 이제 몬스터 패턴 외웠다.첫 번째 몹: 3초 후 돌진 두 번째 몹: 체력 50% 이하에서 광폭화 보스: 30초마다 광역기외우면 뭐하나. 버그 찾아야지. 이번엔 극한 상황 테스트. 치트로 캐릭터 레벨 1로 낮췄다. 장비 다 벗었다. 던전 입장. 몹한테 한 대 맞으니까 죽었다. 부활. 또 죽었다. 10번 연속 죽었다. "이거 페널티 있나?" 확인해봤다. 없다. 만티스에 등록. [버그 ID: #2851]제목: 심연 던전 연속 사망 시 페널티 미적용 심각도: C (기획 의도 확인 필요)30번째 플레이. 이번엔 파티 플레이 테스트. 혼자서 캐릭터 4개 돌린다. 멀티 클라이언트 띄우고, 각각 조작. 보스 잡는데 한 캐릭터가 갑자기 튕겼다. "뭐야?" 로그 확인. 메모리 초과 에러. 파티원이 4명일 때 스킬 이펙트가 겹치면 터진다. 이거 큰 버그다. [버그 ID: #2856]제목: 파티 4인 플레이 시 스킬 이펙트 중첩으로 클라이언트 크래시 재현율: 80% 심각도: A (치명적)팀장한테 슬랙 보냈다. "심각도 A 나왔습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답장 왔다. "개발팀한테 전달했어요. 내일 아침 픽스 들어갑니다." 내일 아침이면 다시 테스트해야 한다.오후 10시, 야근 시작 퇴근 시간 지났다. 아무도 안 간다. 다들 자기 담당 콘텐츠 테스트 중. 나는 50번째 플레이. 이제 던전 구조 눈 감고 그린다. 입구에서 3시 방향으로 20미터. 거기 상자 있다. 상자 100번 열어봤다. 아이템 드롭률 체크. 엑셀에 정리한다.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50회 32 14 3 1확률이 이상하다. 기획서에는 희귀 등급 10%라고 했다. 근데 6%밖에 안 나온다. 100번 더 돌아야 한다. 통계적 유의미성 확보하려면. 팀장한테 또 슬랙. "상자 드롭률 기획서랑 안 맞는데요?" "몇 번 돌아봤어요?" "50번요." "100번 돌아보고 다시 말씀해주세요." 알았다. 100번 더 돈다. 새벽 2시, 밤샘의 중반 편의점 갔다 왔다. 삼각김밥 2개, 레드불 2캔. 사무실 돌아왔다. 불 켜진 자리가 7개. QA팀 전부 남았다.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너 몇 번째야?" "70번이요." "나 120번." "와... 뭐 하시는 거예요?" "레이드 보스 패턴. 확률형 패턴이 3개 있거든. 각 패턴 30번씩 봐야 돼." 저 사람은 더 힘들다. 나는 그나마 낫다. 80번째 플레이. 눈이 침침하다. 모니터가 두 개로 보인다. 레드불 한 캔 더 땄다. 카페인이 혈관을 탄다. 정신이 든다. 다시 던전 입장. 이번엔 속도 테스트. 최대한 빨리 클리어해본다. 스킬 쿨타임 계산하고, 동선 최적화하고. 7분 32초. 두 번째 시도. 6분 58초. "오, 7분 컷 가능하네?" 세 번째 시도. 6분 12초. 근데 이게 문제다. 빨리 깨면 보상이 더 좋아진다. 기획 의도가 뭐지? 속도에 따른 보상 차등이 있나? 기획서 다시 봤다. 없다. 근데 실제로는 보상이 달라진다. 또 버그인가, 숨겨진 기획인가. 기획자한테 슬랙. "심연 던전 클리어 시간에 따라 보상 차등 있나요?" 30분 후 답장. "없는데요? 왜요?" "6분대 클리어하면 보상 더 좋게 나오는데요." "...로그 보내주세요." 로그 캡처해서 보냈다. 1시간 후 답장. "버그 맞습니다. 시간 체크 로직 오류네요. 내일 픽스 들어갑니다." 또 내일이다. [버그 ID: #2889]제목: 던전 클리어 타임에 따른 비정상 보상 지급 재현율: 100% 심각도: A새벽 5시, 한계 90번째 플레이. 손가락이 아프다. 마우스 누르는 것도 힘들다. 캐릭터가 자동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내가 조작하는 건지, 게임이 날 조작하는 건지. 선배가 커피 한 잔 줬다. "고생한다." "형도요." "CBT 때는 원래 이래. 익숙해져." "3년 차인데 안 익숙해요." "나도 5년 차인데 안 익숙해." 웃었다. 웃으면서 운다. 커피 마셨다. 쓰다. 설탕 안 넣었다. 그냥 마셨다. 95번째 플레이. 이제 버그가 안 보인다. 아니다. 내 눈이 버그다. 모든 게 정상으로 보인다. 위험한 신호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옥상 갔다. 바람 쐬었다. 새벽 공기가 차갑다. 서울 하늘이 밝아온다. 5시 30분. 출근하는 사람들 보인다. 나는 아직 퇴근 못 했다. 10분 쉬었다. 다시 들어갔다. 오전 7시, 100번째 드디어. 100번째 플레이. 시작 버튼 눌렀다. 던전 입장. 익숙한 BGM. 익숙한 몬스터. 익숙한 패턴. 9분 만에 클리어. 첫 플레이보다 1분 느리다. 집중력이 떨어졌다. 그래도 했다. 엑셀 정리. 상자 드롭률 최종 집계.총 시도 일반 고급 희귀 영웅100회 64 28 7 1희귀 7%. 기획서는 10%. 확실히 다르다. 보고서 작성. 팀장한테 메일. 제목: [심연 던전 1층] 100회 테스트 완료 - 드롭률 이슈 포함 본문:총 플레이 시간: 14시간 발견 버그: 23건 (A등급 3건, B등급 8건, C등급 12건) 드롭률 오차: 희귀 등급 -3%p 재테스트 필요 항목: 파티 플레이 크래시 (픽스 후)보냈다. 시계 봤다. 7시 30분. 출근 시간이다. 나는 아직 회사에 있다. 오전 9시, 출근 사람들 출근한다. 개발팀, 기획팀, 아트팀. 다들 출근한다. QA팀은 아직도 있다. 밤샘한 사람이 7명. 팀장이 말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10시까지 쉬고 12시에 회의 있어요." 3시간 쉰다. 어디서 쉬지? 집 가기엔 애매하다. 회의실 소파에 누웠다. 눈 감았다. 1초 만에 잠들었다. 낮 12시, 회의 알람에 깼다. 몸이 무겁다. 목이 아프다. 허리가 끊어질 것 같다. 세면장 갔다. 얼굴 씻었다. 거울 봤다. 다크서클 장난 아니다. 회의실 들어갔다. 개발팀장, 기획팀장, QA팀장. 그리고 우리. "밤샘 테스트 결과 공유하겠습니다." 팀장이 발표했다.총 발견 버그: 147건 A등급(치명적): 12건 B등급(심각): 43건 C등급(경미): 92건개발팀장 표정이 굳었다. "A등급이 12건이요?" "네." "CBT까지 2주인데..." "알고 있습니다." 기획팀장이 말했다. "드롭률 문제는?" "5개 던전 전부 확률 오차 있습니다. 재조정 필요합니다." 한숨 소리가 들렸다. 누가 쉰 건지 모르겠다. 다들 쉰 것 같다. 회의 끝났다. 결론:A등급 버그 우선 픽스 드롭률 전면 재조정 QA팀 추가 인력 투입 야근 수당 승인야근 수당은 좋다. 근데 돈보다 잠이 필요하다. 오후 2시, 재시작 픽스된 빌드 받았다. A등급 버그 12건 중 3건 수정됐다. 다시 테스트. 심연 던전 1층. 또 들어간다. 101번째 플레이. 파티 플레이 크래시 확인. 캐릭터 4개 띄우고, 스킬 난사. 안 튕긴다. "오, 고쳐졌네." 10번 더 해봤다. 안정적이다. 만티스에 코멘트. [버그 #2856 - 해결 확인] 102번째 플레이. 이번엔 2층 던전. 새로운 맵. 새로운 몬스터. 새로운 버그. 또 시작이다. 저녁 8시, D-13 하루가 지났다. CBT까지 13일 남았다. 오늘 100번 돌았다. 내일도 100번 돈다. 모레도. 글피도. 2주 동안. 선배가 말했다. "겜큐야, 이거 먹어." 비타민이었다. "이거 먹으면 덜 피곤해." "감사합니다." 먹었다. 효과는 모르겠다. 그냥 먹는다. 먹으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아서. 밤 11시, 혼잣말 130번째 플레이. 혼자 중얼거린다. "이 몹 체력이 12,500이고..." "스킬 쿨타임 5초..." "돌진 패턴은 3초 후..." 말하면 집중이 된다. 말 안 하면 멍해진다. 옆자리 동료도 중얼거린다. "확률이 왜 이래..." "100번 돌았는데..." 우리는 미쳤다. 게임에 미쳤다. 아니다. 버그에 미쳤다. 새벽 1시, 편의점 또 편의점. 이번엔 도시락. 치킨 마요 도시락. 레드불 3캔. 초코바 2개. 계산했다. "야근하세요?" 알바생이 물었다. "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돌아오는 길. 하늘 봤다. 별 없다. 서울은 별이 안 보인다. 불빛이 너무 많아서. 우리 사무실 불빛도. 새벽 1시인데 환하다. 새벽 3시, 150번 150번째 플레이. 이제 감각이 없다. 손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뇌는 꺼졌다. 근육이 기억한다. 던전 입장. 스킬 1번. 스킬 2번. 회피. 평타. 스킬 3번. 클리어. 7분 43초. 로그 확인. 이상 없음. 다음. 151번째. 또. 152번째. 또. 새벽 5시, 끝 160번째 플레이 끝냈다.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또 한다. 자리 정리했다. 쓰레기 버렸다. 레드불 캔 7개. 커피 컵 4개. 초코바 껍질 3개. 내 몸이 쓰레기다. 가방 챙겼다. 나갔다. 새벽 공기. 차갑다. 눈 감았다. 그냥 여기서 자고 싶다. 오전 6시, 집 고시원 도착. 문 열었다. 침대 보였다. 쓰러졌다. 알람 맞췄다. 9시 30분. 3시간 30분 잔다. 10시 출근이다. 눈 감았다.CBT까지 13일. 던전은 4개 남았다. 버그는 계속 나온다. 잠은 계속 부족하다. 이게 게임 QA다.

게임 QA 3년차, 연봉은 왜 안 오를까

게임 QA 3년차, 연봉은 왜 안 오를까

3년차 QA, 연봉이 왜 안 오를까 출근했다. 빌드를 받아서 설치했다. 오늘따라 로딩이 느렸다. 기획자 박준호가 옆에 앉아서 신규 던전 밸런스 물어봤다. "재현율이 몇 퍼정도 되는 거 같아요?" 내 대답이 나왔다. 그는 메모했다. 내 테스트 데이터로 게임이 돌아간다. 그런데 월급은. 같은 팀 개발자 김태현이 어제 승진했다. 들었다. 연봉 200만원이 올랐대. 3년 차에 6천 중반이라고. 나는 3400. 작년이랑 같다. 재작년이랑도 같다. 올해도 같을 거다. 이게 사실이다. 개발자는 올라가는데 회사에서 분기마다 연봉 조율 회의가 있다. 같은 팀 5명의 개발자들 중에 4명이 올해 인상을 받았다. 평균 150만원. 한 명은 프로젝트 리더가 되면서 300만원 올랐다. 나는 회의 대상이 아니었다. QA팀 리더 이미라가 말했다. "상황상 올려줄 수 없어. 미안해." 상황이 뭔데. 그건 아무도 안 말했다. 버그 리포트는 계속 들어온다. 지난달 84건. 이번 달 현재까지 76건. 심각도 High 이상만 해도 15건. 내가 찾은 버그들이 게임을 살렸다. CBT 때 리스판 방어력 버그를 못 찾았으면 런칭 후 유저들이 던전에서 못 나갔을 거다. 그걸 내가 찾았다. 커밋 메시지도 내 이름이 있다. 그래도 3400. 야근 수당만 봐도 알 수 있다. 개발자들은 야근 수당으로 월 80120만원을 번다. 나는 160180만원을 번다. 같은 팀에서 제일 많이 야근한다. CBT 때는 자는 게 죄였다. 밤 12시에 새로운 빌드가 올라오면 그 자리에서 테스트했다. 개발자들은 그 사이에 코드를 짠다. 나는 검증한다. 같은 야근인데 인상폭이 다르다.이미라가 말한 이유들 작년에 물어봤었다. "왜 안 올려줘요?" 이미라는 3가지를 말했다. 첫째, QA는 "비용 센터"라고 한다. 개발팀은 "수익 센터"다. 게임이 나오는 게 개발팀의 역할이고, QA는 그 게임을 검증하는 거라서 비용으로 본다는 뜻이다. 회계 관점에서는 맞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게임이 망하는 건 개발 능력 때문만이 아니다. 품질이 떨어지면 유저들이 떠난다. 런칭 첫 주에 크래시 버그가 3건만 있어도 이미지가 박힌다. 그걸 막는 게 우리인데. 둘째, 게임 회사에서 QA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버그를 찾는 건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디버그 모드에서 극한 상황을 만들고, 콤보를 짜고, 확률을 검증해야 한다. 엑셀로 1000개 샘플을 뽑아서 분포도를 그리고, 기대값이랑 실제값을 비교한다. 그걸 여러 변수 조합으로 반복한다. 개발자들은 이 과정을 본다. 그렇다면 "누구나"일까. 아니다. 근데 회사는 그렇게 본다. 셋째, 시장 문제다. QA 경력자가 많으니까 새로 채용하는 게 더 싸다고 한다. 신입은 월 2000만원부터 시작한다. 나는 3400을 받는다. 1400만원 차이가 난다. 회사 입장에선 나 대신 신입 두 명을 뽑고, 내 업무를 나눠줄 수 있다. 통장 관점에서는 900만원이 절약된다. 그리고 신입들은 성장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나는 "3년 해온 거 이 정도네" 정도로 본다. 이게 QA 시장의 구조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다들 아는 구조다. 개발자 옆에 앉아 있는데 같은 팀 개발자들한테는 물어본 적 없다. 근데 들었다. 신입 개발자 임준석이가 이직 계약서를 받고 미쳤다고 했다. 연봉 50% 올라간다고. 5년 경력 개발자라면 대우가 어떨까. 내가 5년 QA 경력이라면. 계산 안 해도 안다. 게임 회사 QA는 보직이 별로 없다. 팀 리더는 한 자리다. 이미라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QA 리더가 되려면 그 자리가 비거나 새로운 팀이 생겨야 한다. 신규 프로젝트가 있을 때 정도다. 그런데 신규 프로젝트는 경력 많은 개발자들 중에서 리더를 뽑는다. QA에게는 기회가 없다. 개발자는 다르다. 시니어 개발자, 아키텍처, 플랫폼팀. 보직이 많다. 비게 되는 자리도 많다. 올라갈 계단이 있다. 내 경력은 계단이 없다. 옆에만 있다.그래서 이직을 봤다 3개월 전부터 잡사이트를 봤다. 게임 QA 공고는 많지 않다. 대부분 "신입 환영"이라고 쓰여 있다. 그 다음은 "경험자 우대"인데, "우대"는 10만원 정도다. 포지션이 없으니까 연봉이 비슷하다. 3400에서 3600으로 옮기는 게 이직이냐. 다른 직군을 봤다. 서비스 QA. 웹 서비스 회사들이 뽑는다. 연봉이 비슷하거나 낮다. 게임 업계와 다르지 않다. 개발자로 전향할까도 생각했다. 부트캠프가 있다. 3개월에 600만원. 그 다음에 신입으로 2500만원짜리 일자리. 연봉은 내려간다. 3년을 다시 돌린다. 45세에 시작하는 거랑 비슷하다. 그러다가 게임사 기획팀 공고를 봤다. "게임 QA 경력자 환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연봉은 4200. 오랜 기간에 누적된 게임 이해도가 도움 된다고. 첫 번째로 희망이 생겼다. 그런데 카톡했다. 선배는 말했다. "기획팀으로 가면 정치가 심해. 내 역할이 뭔지 모르는 기분이 든다고 했어." 희망은 깨졌다.야근 수당으로 버티는 게 현실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한다면. 계산해 봤다. 야근 수당 160만원, 기본급 3400. 야근 없으면 3400. 야근만 있으면 3560. 런칭 전후로 야근이 심해서 월평균 3550 정도다. 그런데 이건 언제까지. CBT가 3달, 런칭 후 2달. 5달은 야근한다. 나머지 7달은 정상 근무인데 야근 수당도 적고, 본급이 늘지 않는다. 저축은 어렵다. 고시원 월 40만원, 밥 월 100만원, 휴대폰 5만원, 나머지 잡비. 손에 남는 게 월 200만원이면 많은 거다. 결혼은 생각도 못 했다. 여자친구 사귈 시간도 없었고. 저축하면서 "얘랑 할 시간이 없네"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발자들은. 김태현이 얘기했다. 신혼집 월세 계약했대. 전세금 3000만원. 본인이 1500, 부모님이 1500이라고 했다. 가능한 이유는 본급이 올라갔으니까 대출이 가능했다고 했다. 3년 차에 6천인데, 금융사가 빌려준 거다. 나는 3400인데 신청해 본 적 없다. 상담원이 뭐라고 할지 알 것 같았다. 재현율이 맞다고 해도 버그는 계속 터진다. 런칭 후 1주일에 10건씩. 이미라가 개발팀 리더 이동훈한테 "이미 테스트했던 항목들이 왜 또 터져요?" 라고 물었다. 당연히 내 쪽으로 온다. "겜큐, 이게 어때?" 뭐가 "어때"냐. 테스트 계획서에 있는 항목이고, 재현율 확인했고, 심각도 분류했고, 리포트 올렸다. 개발팀에서 못 고쳤거나 롤백했거나다. 그런데 회사 분위기는 "QA가 놓쳤나" 정도다. 회의에서 명시적으로 누가 누구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말하는 방식이 그렇다. "런칭 전에 충분히 테스트했어요?" "아, 이거는 엣지 케이스네요." 엣지 케이스는 무한정이다. 범위 정하는 게 기획팀과 개발팀의 일이지, 내 일이 아니다. 가끔 내가 놓친 버그가 있을 수도 있다. 100%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불가능하니까 전부 찾으세요" 이 정도인데, 연봉은 그에 맞지 않는다. 책임은 무한대, 급여는 고정. 이 구조가 싫다. [IMAGE_4] 3년을 돌아보면 입사할 때는 "게임사에서 일한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친구들한테 말했다. "게임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어" 반응은 "오, 부럽다" 였다. 급여 명세서는 안 보여줬다. 첫 해는 배울 게 많았다. 테스트 케이스 짜는 법, 버그 심각도 분류, 재현 가능한 순서로 리포트 쓰기. 이미라가 잘 가르쳐줬다. 코드를 이해할 필요는 없었지만, 게임의 흐름은 알아야 했다. 게임을 분석하면서 즐거웠다. 2년차는 조금 달랐다. 반복이 늘었다. 같은 던전을 100번 돌 때쯤엔 게임이 게임으로 안 느껴졌다. 일이 됐다. 그런데 연봉은 안 올랐다. 승진은 없었다. 보너스는 "회사 실적에 따라"라고 했는데, 회사 실적이 좋아도 내 보너스는 변하지 않았다. 3년차인 지금. 그냥 일로 느껴진다. 버그 찾는 재미도 없다. "또 찾아야 하나" 이 정도다. 한 팀에서 3년 더 할 거면, 그렇게 살아야 하나 싶다. 40대까지. 50대까지. 아, 그리고 이직 가능한가 내 경력서를 쓰면 뭐라고 할까. 게임 QA 3년. 아니, 이건 회사에서 원하는 경력이 아니라 시간일 뿐이다. 실제로 뭘 했는가.RPG 게임 테스트 (다른 회사에선 FPS가 필요할 수도) 확률 검증 엑셀 분석 Mantis 버그 관리 (다른 회사는 Jira 쓸 수도) 밸런스 테스트이게 다른 회사에서 쓸모 있을까. 게임사에서는 그렇다. 다른 산업에서는 "게임 테스트만 해봤네" 이 정도다. 경력 이동성이 없다. QA 시장이 그렇다. 게임사 QA에서 일한 사람이 일반 소프트웨어 QA로 가는 건 쉽다. 반대는 어렵다. 게임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 선호되니까. 그래서 게임 QA는 게임사 안에만 있다. 게임사 안에서는 연봉이 안 올라간다. 악순환이다. 신입 때부터 알았다면 이직을 했을 거다. 2년 정도만 버티고 다른 회사 가서 경력을 쌓는 방식으로. 3년을 여기서 했으니 남은 선택지는. 이대로 가거나, 이직하거나, 직급을 꺾고 신입으로 다시 시작하거나다. 어느 쪽도 "좋은" 선택 같지 않다. [IMAGE_5] 그래도 내일도 나갈 거다. 빌드를 받고, 테스트 계획을 보고, 게임을 켤 거다. 버그를 찾을 거다. 리포트 할 거다. 이 반복이다. 최근에 새로운 신입 QA가 들어왔다. 이름은 박우진. 23살. 게임 덕후라고 했다. 면접 때 게임에서 게임 산업으로 올 수 있다고 생각했대. 나도 비슷했다. 3년 전. 우진이를 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싶다. "회사 다니면서 틈틈이 다른 회사 지원해" 이렇게 말해야 하나. "3년 지나도 월급 안 올라" 이렇게 말해야 하나. 결론부터 말해야 하나. 오늘은 그냥 테스트나 끝내고 가야겠다. 내일 회의 전에 버그 리포트 정리하고. 밤 9시 정도에는 나갈 수 있겠지. 아, 혼자만 이렇지 않을 거다. 게임사 QA는 다 비슷할 거다. 같은 업계 다른 회사 QA들도 똑같은 연봉, 똑같은 야근, 똑같은 불만. 우리는 같은 문제를 풀고 있다. 근데 따로 논다.연봉 올리는 방법은 이직인데, 이직할 회사가 없다. 게임 회사 벽에 갇혀 있다.